예산 없고 이용률 낮아서 폐관… 점자도서관의 '뼈아픈 모순'
더스쿠프-가톨릭대 공동기획
視리즈 ESG의 이해와 전망➍
불꺼진 점자도서관의 자화상 1편
지난해 12월 서울점자도서관 폐관
이유 중 하나는 ‘이용률이 적어서’
점자 문맹 10명 중 9명이기 때문
점자도서관 등 교육 기관 늘려야
#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점자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다. 점자 교육이 이뤄지는 장場이자 시각장애인의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 이런 점자도서관들이 이용객이 적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점자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니, 효율성 측면에선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 문제는 점자도서관의 존폐 여부를 '이용률'로만 따질 수 있느냐댜. 시각장애인 10명 중 9명이 '점자'를 읽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점자 문맹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점자도서관의 존폐를 이용률로 결정했다면 이는 정책적 오류다.
#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가 가톨릭대와 함께 기획한 클래스 'ESG의 이해와 전망(김승균 교수)'을 통해 불꺼진 점자도서관의 자화상을 짚어봤다. 그 첫번째 편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점자도서관은 조용하지 않다.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할 때 나는 기계음 소리와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소리가 도서관을 채운다. 책을 읽어주고, 점자를 가르쳐주는 음성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선 카페처럼 담소를 나눌 수도 있다. 점자도서관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커뮤니티'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몇몇 점자도서관이 조용해졌다. 그중 서울점자도서관은 8개월째 불이 켜지지 않고 있다(더스쿠프 통권 585호 '"예산 줄어서" vs "예산 늘렸다" 서울점자도서관 폐관의 진실' 참고).
서울시는 장애인도서관 지원예산 중 70%를 균등배분, 30%를 차등배분하고 있다. 서울점자도서관은 다른 장애인도서관보다 이용객이 적은 탓에 차등배분 항목의 지원이 줄었다. 지난해 12월 문을 닫은 서울점자도서관의 폐관 이유 중 하나가 시각장애인들의 점자도서관 이용률이 적어서란 얘기다.
그럼 이용객이 많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시각장애인의 점자도서관 이용률이 높아지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이 질문의 답을 풀기 위해선 '점자 문맹'의 현주소부터 살펴봐야 한다.
국립국어원이 출간한 '2021년 점자 출판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등록 시각장애인 수는 총 25만2703명이다. 그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은 9.6%에 불과하다. 점자를 사용할 수 없는 이들이 10명 중 9명이란 얘기다.
점자 문맹률이 높은 원인은 교육기관이 부족해서다. 시각장애인 학생은 특수교육기관인 맹학교에서 점자교육을 받는다. 맹학교는 2024년 기준 총 12개교밖에 없다. 성인 시각장애인의 경우 주로 시각장애인복지관과 각 지역 시각장애인연합회, 몇몇 장애인도서관(점자도서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은 15개에 불과하다. 시각장애인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일례로 경기도에서 성인 시각장애인이 점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경기도시각장애인연합회(수원)와 경기도 시각장애인복지관(양주) 두곳뿐이다. 파주와 포천에 거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이 점자 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양주까지 이동해야 하는 거다. 긴 이동은 시각장애인에게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온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엔 점자를 가르칠 인력도 부족하다. 류영태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교정사는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쪽은 점자 교육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전주에 사는 시각장애인분이 점자 시험을 보고 싶은데,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찾아온 적이 있어요. 수업을 몇번 받긴 했지만, 거리 문제로 중도 포기를 했죠. 25만명의 시각장애인이 다 서울에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전국적으로 점자 교육 활성화가 필요해요."
그렇다면 비대면 교육을 활성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쉽지 않은 문제다. 점자 교육은 비대면이 더 힘들다. 초보자는 점자를 읽을 때 필요한 '점형'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점자를 가르치는 이가 옆에서 해당 글자가 어딨는지 알려줘야 한다.
류영태 점역교정사는 "초보를 상대로 비대면 교육을 하던 도중 '망아지'란 점자가 어딨는지 몰라서 40분 동안 찾은 적이 있다"며 "비대면 교육을 할 경우 학생들이 점자 페이지의 위치를 찾는 걸 굉장히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사실 점자교육을 '대면'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만나는 '창구' 역할을 해줄 수 있어서다. 몇년 전 시력을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 정상민(63)씨는 올해 초부터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점자 교육을 받고 있다. 같은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스터디도 진행한다.
수업 현장은 진지함이 가득하다. 점자 교육 강사가 '인생역전'이란 단어를 말하자, 상민씨는 '엄지' '역무원' '서울역' 등 다양한 단어가 적힌 점자예문판을 손으로 더듬어 '인생역전'을 찾아낸다. 상민씨는 이어 점판에 점필을 꾹꾹 눌러 '인생역전'을 쓰려고 시도한다. 힘겹지만 즐거운 일이다.
상민씨는 "시각을 잃은 후 처음에는 우울증이 와서 집에만 있었다"며 "지금은 힘들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써나갈 때 기분 좋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두현 노원시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센터장은 "점자 교육은 실명한 시각장애인의 인생에 단기적ㆍ장기적으로, 엄청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곳에서 점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점자도서관을 없애지 말아야 할 까닭이기도 하다.
전지혜 인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역에 있는 점자도서관 등 점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은 수요 대비 공급을 고려해야 한다. 공급량과 접근성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 시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과연 어떤 정책을 갖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불꺼진 점자도서관의 자화상' 두번째 편에서 이어나가 보자.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신서윤 국제학부 학생
shin122314@gmail.com
오연주 사회복지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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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규 경영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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