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 뜬다⑪] 싱싱한 고급 과채, 도심 건물 옥상에서 키운다(끝)
[편집자 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소비자의 지식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여기에 인간 수명까지 늘어나면서 건강을 개선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개인 맞춤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자원 낭비는 줄이고 식품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 산업도 주목됩니다. 식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조리 및 외식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도 각광받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이 모든 것을 현실화하는 ‘푸드테크’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푸드테크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이 푸드테크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혜안을 모색해 봅니다.
19일 찾은 대전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 한 연구동 옥상에는 유리 온실이 조성돼 있었다. 평범한 연구 시설 옥상에 설치된 이 온실은 기계연 친환경에너지연구본부 도시환경연구실이 추진하는 일명 '와이즈팜'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됐다. 건물에서 나오는 열과 탄소 폐에너지를 활용해 작물을 기를 수 있다.
최은정 기계연 도시환경연구실 선임연구원은 "도심 빌딩 에너지 그 자체를 활용하는 옥상온실은 에너지 비용 절감은 물론 작물을 산지에서 도심으로 옮기는 유통비용도 절약하며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2021년 5월 시작돼 2025년 12월까지 진행되는 기계연의 옥상 온실형 스마트 그린빌딩 개발 사업은 정부출연금 320억원을 포함해 369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된다. 기계연을 포함해 산학연 17개 기관이 참여한다. 건물에서 버려지는 폐에너지(분산자원 에너지)를 활용해 건물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고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한 스마트 빌딩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기계연 도시환경연구실은 이 옥상 온실에 와이즈팜이란 이름을 붙였다. '폐기물이 생기지 않는(Waste free)', '똑똑한(Intelligent)',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에너지 효율적인(Energy efficient)'의 앞글자를 땄다. 사업의 최종 목표는 도심 속 어느 건물에나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와이즈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어떤 건물에서도 옥상 유휴 부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설치와 운영이 간편하고 비용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통합 모델을 표준화하는 것이 이 사업의 계획이다"고 말했다.
건물 옥상을 온실로 활용하는 이 아이디어는 시골 온실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일반 농촌 지역에 설치된 온실에서 에너지를 절감하는 기기를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하던 중 이러한 기기 자체를 통째로 도심으로 옮겨오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최 연구원은 "처음에는 시골 온실을 개발하는 연구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와이즈팜 프로젝트는 건물에서 생산되는 폐에너지의 유용성과 맞물리면서 추진력을 얻게 됐다"고 소개했다.
건물에서 생산되는 폐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기계연은 독자적인 에너지 교환기술을 개발했다. 건물과 온실의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제어해 열과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기술이다. 기존 냉난방에 필요한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전력이 사용될 곳으로 송전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송전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크게 일어난다는 게 단점이다. 절반 정도의 에너지가 송전 과정에서 사라진다. 기계연의 이른바 '분산 발전' 기술은 건물에서 생산되는 열과 이산화탄소를 적극적인 방식으로 교환해 겨냥한 시설에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
폐에너지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작물에 해가 되는 오염물질을 관리하는 기술도 함께 연구되고 있다. 최 연구원은 "작물이 자라면서 미생물이나 공기 중 오염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러한 물질들이 온실 속 작물이나 건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물을 청정하게 기르기 위해 유해한 물질을 제거하는 가스엔진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미 개발이 완료됐다. 사람이 생활하는 곳에서 사람이 먹는 식재료를 생산하는 시설인 만큼 만약의 위험성을 면밀히 살피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옥상 온실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맛이나 질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최 연구원은 "야채류의 경우 온실에서 재배된 작물은 땅에서 재배된 작물과 비교했을 때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는 특성이 있다"며 "기계연 온실에선 멜론을 기르고 있는데 당도가 높고 과육의 질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충북대가 작물의 질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옥상 온실의 초기 모델은 이미 도심에서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현재 성수동 업무시설 옥상에 713제곱미터(m2) 부지에 500m2 면적의 옥상 온실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선 파프리카, 오크라, 서양 가지 등 고부가가치 작물이 재배된다. 생산된 작물은 성수동 인근의 고급 식당의 식재료로 조달된다. 2차 실증은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최 연구원은 "시중에 흔하지 않는 작물을 활용하는 고급 식당이 원하는 작물만을 소규모로 재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옥상 온실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건물 옥상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선 건축법상 규제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온실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하지 않게 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요구된다. 최 연구원은 "연구개발 과제가 종료된 이후 취득한 데이터를 꾸준히 분석해 규제 완화의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며 "와이즈팜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선 친환경 건축물 인증을 받는 데 필요한 용적률, 고도제한 기준 완화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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