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 석유 → 통신… 10년마다 새 우물판 ‘혁신 아이콘’

이용권 기자 2024. 8. 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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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 유공(당시 대한석유공사)을 인수하면서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그림을 완성한 고 최종현 선경그룹(SK그룹 전신) 선대회장은 죽는 날까지 미래 사업 구상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SK텔레콤으로 대표되는 그의 IT 사업 구상은 외산 중심이었던 이동통신장비를 국산화하고, 다양한 고객서비스 경쟁을 촉진하며 전 국민이 최고 품질의 이동통신을 쓰는 시대를 앞당기면서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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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위복 리더쉽’ 최종현에 묻다 - <下> ‘IT 강국’ 일군 도전정신
美 현지 미래 경영기획실 설립
전문인력 확보하고 투자 확대
“가전·車는 이미 경쟁자 많아
국가적인 낭비일뿐이라 생각”
뚝심경영으로 이통사업 진출

1980년 11월 유공(당시 대한석유공사)을 인수하면서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그림을 완성한 고 최종현 선경그룹(SK그룹 전신) 선대회장은 죽는 날까지 미래 사업 구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공 초대 사장으로 취임해 막대한 부채와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정상화하자마자 1982년부터 바로 차세대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기술(IT) 사업을 차기 주력 분야로 선정했는데, 이는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도약하게 된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선경그룹은 1984년 전격적으로 미국에 경영기획실을 설립하고,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시킨다. 통신 강국 미국에 세운 사업 전초기지였다. 1986년 미국 경영기획실이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낸 구인광고에 단 1명도 지원하지 않는 수모도 겪었지만, 그의 미래 경영 의지는 중단되지 않았다. 현지 투자파트너를 통해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1988년 미국 소규모 이동통신사 지분 투자를 통해 이동통신 경영을 학습한다. 이듬해에는 현지 투자회사 ‘유크로닉스’를 설립해 관련 벤처업체에 투자를 늘린 뒤, 시카고 지역 이동통신사에 직원을 파견해 실무경험을 익히는 등 치밀한 준비를 이어간다. 준비된 자에겐 기회도 찾아온다. 정부가 1990년 이동통신 분야 경쟁체제 도입을 주요 골자로 하는 통신사업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최 선대회장은 미국 경영기획실 핵심인력들과 1991년 4월 SK텔레콤의 전신인 선경텔레콤(이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을 설립하면서 IT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최 회장이 IT를 주력 사업으로 추진한 배경은 선경텔레콤 설립 이듬해 신년사에서 확인된다. “석유화학 수직계열화 완성이 기사화될 즈음인 10여 년 전부터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해왔습니다. 당시 각광을 받던 가전업계나 자동차업계 진출도 고려했지만, 이들 분야는 이미 충분한 경쟁체제가 이루어져 있어 기존업체와 경쟁이 불가피하고, 국가적으로 낭비를 초래할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서 성장 가능성도 고려했습니다.”

대한텔레콤은 1992년 정부가 공고한 제2이동통신 허가에 참여했고 1~2차 심사에서 압도적 점수로 선정됐다. 수년간 미국 경영기획실에서 닦은 경험과 노하우로 사업계획서를 수립해, 해외 파트너들이 사업계획서를 주로 작성한 경쟁 컨소시엄과 차별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적 이유로 사업권을 반납하는 불이익을 겪었지만, 최 선대회장은 의지를 굳히지 않았다.

사업권 반납 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김영삼 정부로 이양됐고, 새 정부의 민영화 추진 전략에 따라 한국이동통신 주식 경쟁입찰에 참여, 공개 인수를 통해 IT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현재 SK텔레콤으로 대표되는 그의 IT 사업 구상은 외산 중심이었던 이동통신장비를 국산화하고, 다양한 고객서비스 경쟁을 촉진하며 전 국민이 최고 품질의 이동통신을 쓰는 시대를 앞당기면서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이끌었다.

이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사업을 구상하는 최 선대회장의 경영법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재계 평가다. 실제 SK그룹의 사업은 1970년대 초 폴리에스터에서부터 시작해 1980년대 석유사업, 1990년대 IT 사업 등 10년 주기로 재편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러한 경영법은 오랜 세월에 걸친 사업 준비와 실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며 “그의 리더십이 재계 다른 리더들과 차별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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