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고미술품은 중국 아닌 한국서 만들어졌다”
한국서 파리 거쳐 미국 건너가
주인공은 영조시대 문신 이정보
회갑연때 그린 그림으로 추정돼
“한국인, 문화유산 무관심”일침
조선시대 선비를 그린 회화 작품이 프랑스 파리에서 발견돼 미국인 수집가가 구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에 이조 및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지낸 문신 이정보(李鼎輔·1693∼1766)인 것으로 추정된다.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포토 저널리스트 강형원 씨는 “한국 미술 수집가인 미국인 지인으로부터 신원 미상의 조선시대 선비 초상화를 파리에서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 사진을 문화일보에 최근 제보했다. 가로 52㎝, 세로 1m의 이 회화는 ‘창주노인의 회갑 시 진영(滄洲翁周甲眞)’이라는 제목의 화상찬(畵像讚·그림에 붙인 글)을 갖고 있다. 이 글은 초상화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제공하고 있다.
강 씨로부터 본보와 함께 초상화 사진을 건네받고 검증 작업을 한 김남형 계명대 한문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이정보의 회갑을 기념하며 조정에서 화원을 시켜 그린 진영(眞影)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진영의 화상찬을 쓴 이는 스스로를 오천노인(梧川老子)이라고 적었는데, 오천은 조선 후기 문신 이종성(李宗城·1692∼1759)의 호이다. 이종성의 글에 따르면, 초상화 주인공은 성리학보다 실학을 중시했으며 문장에 능했다.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풍상을 겪은 후 대신 반열에 오른다. 1753년 계유년에 만 60세가 된 이 인물은 녹옹(鹿翁·조선 후기 문신 조현명의 호)과 친했다.
김 교수는 “이런 내용에 모두 합치되는 인물은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하다가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가 복권이 된 이정보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정보의 호는 삼주(三洲)였는데, 노론의 영수였던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별호가 삼주(三洲)였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만년에 창주(滄洲)라는 호를 썼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국가유산청 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낸 김 교수는 “진영은 조선시대 회화 중에서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라며 “기록화를 넘어서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예술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 있어야 할 진영이 어떤 연유로 외국에 나가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했다.
이 진영을 구매한 미국인 수집가는 “조선 선비의 초상화가 너무 중요한 작품으로 보여서 내가 사지 않으면 사라질까 봐(If I didn’t buy it, it would disappear) 파리의 한 화랑으로부터 사들였다”고 밝혔다. 올해 82세인 이 수집가는 파리의 기메동양박물관(Musee Guimet)에서 지난 2005년에 열린 조선시대 회화전의 기획자문역(Consulting Curator)을 했을 정도로 한국 전통 미술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다. 그는 “서양에서 좋은 동양 미술품이 나오면 무조건 중국문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40여 년 미술품 소장경험에 의하면 진짜로 좋은 고미술품은 한국문화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자신의 문화 역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Most Korean people have not developed appreciation of Korean cultural history)”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래서 한국 문화 유산을 기록하는 일이 미래 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근년에 한국 문화유산을 촬영하고 있는 포토 저널리스트 강 씨의 프로젝트에 의미를 둔 발언이다.
강 씨는 “우리 선비 문화에 대한 취재를 하다가 파리에서 조선 문인의 진영을 만났다”며 “우리 문화재가 해외 수집가로부터 귀하게 대접받으며 잘 보관되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1993년 LA 4·29 폭동과 199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스캔들 보도 사진으로 2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가서 LA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미국 언론사에서 33년간 사진 기자로 활약했다. 모국에 돌아온 후 우리 문화유산을 기록하는 프로젝트(‘Visual History of Korea’)를 진행하고 있다.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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