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탄생 120년 시진핑 연설…업적 칭송하면서 자신의 정책 기조 강조[연설 요지]

구자룡 기자 2024. 8. 23. 11:2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8.23.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2일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을 맞아 덩의 업적과 유산을 되돌아보는 장문의 연설문을 발표했다.

시 주석은 덩의 이력과 이룬 업적과 영향 등을 소개한 뒤 후반부에서는 그의 ‘공동 부유’ 등 자신의 주요 핵심 정책 기조를 소개했다.

시 주석은 덩이 주창한 ‘선부론(특정 지역과 계층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을 용인)’을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공동 부유와 어떻게 차이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음은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한 시 주석 연설의 요지.

덩샤오핑 동지는 당 중앙 지도부 2세대의 핵심, 중국 사회주의 개혁과 개방, 현대화의 주요 설계자,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선구자, 덩샤오핑 이론의 주요 창시자이자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영광스럽고 투쟁적이며 위대한 생애였다. 그의 업적은 역사에 빛나고 미래 세대에 영원히 영감을 줄 것이다.

부패한 봉건 통치, 서구 열강의 침략,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받는 인민들이라는 심각한 국가적 재난에 직면하여, 청년 덩샤오핑은 고향에서 적극적으로 대중투쟁에 참가했다.

그는 그 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확고히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했고 공산당에 가입했다.

1927년 덩샤오핑 동지는 소련에서 귀국하여 당이 영도하는 새로운 민주 혁명투쟁에 참가하였다.

그는 중앙혁명기지 관련 사업에 참여하고 장정과 쭌이회의에 직접 참가했다.

항일전쟁과 해방전쟁 기간에 산시, 허베이, 산둥 등지에 항일기지를 건설하고 신중국 건설에 탁월한 공헌을 하였다.

신중국 건국 초기 중공중앙 서남국 주요 책임자를 맡았다. 그는 티베트 진군과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지도하고 서남지역 변혁을 이룩했다.

1952년 7월 이후 부총리,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지냈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직후 잘못된 비판과 투쟁을 겪었고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다.

1973년 복귀한 뒤 1975년부터 당과 국가, 군을 책임지기 시작하여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심각한 혼란을 반전시키기 위해 과감하고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4인방에 의해 부당하게 밀려나고 비난을 받았지만 확고부동하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헌신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덩샤오핑 동지는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의 새 시대를 성과적으로 창조해냈으며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했다.

덩샤오핑 동지는 위대한 역사적 전환점을 이끌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당과 국가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직면한 중요한 역사적 고비에서 그는 사실에 의한 진실 추구, 군중노선, 독립이 마오쩌둥 사상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그의 지도하에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1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사상해방, 실사구시의 사상노선을 재정립했다.

당과 국가의 사업 중심을 경제건설로 전환하겠다는 결정은 개혁개방의 역사적인 결정이었으며 당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이룩했다.

덩샤오핑 동지는 마르크스주의 중국화의 새로운 도약 실현을 추진했다.

그는 ‘샤오캉 사회 건설’ ‘중국식 현대화의 길 개척’이라는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당이 현대화 3단계 발전 전략을 수립하도록 지도했다.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올바른 길을 세웠다. 그는 ‘일국양제’라는 이념을 창의적으로 제시하고 달성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이 비전에 따라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주권 행사를 연속적으로 재개했고 중화민족의 100년 동안의 굴욕에서 벗어났다.

1989년 봄과 여름 전환기에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급격한 변화를 배경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났다.

결정적인 순간에 당과 인민을 이끌고 소란에 맞서 분명한 입장을 취하도록 했다. 사회주의 국가권력을 결연히 수호함으로써 당과 국가가 험난한 폭풍우와 파도의 엄혹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사상적 부는 그가 주로 창시한 덩샤오핑 이론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덩샤오핑 이론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적용해야 하며 그 과학적 의미와 핵심 본질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의 이론 중에는 일부 지역과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도록 장려해야 하며, 첫 번째 부자가 후자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됐다.

당은 한 손으로 개혁과 개방에 집중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패를 처벌해야 한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을 무시하고 다른 하나는 너무 적게 강조하면 쉽게 실용적인 편차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인민주권을 견지하고 공동번영을 확고히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도농격차, 지역격차, 소득격차를 완화하고 전 인민의 공동번영을 촉진하여 더욱 뚜렷한 실질적인 진전을 지속적으로 이룩해야 한다.

우리는 외부 세계에 대한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진하면서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

일대일로 구상의 고품질 발전을 촉진하고 대외개방에서 국가안보 수호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조국의 완전한 통일 실현은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 혁명가들의 숙원이다.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1992 합의’를 견지하며 확고부동하게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