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들] 권성주 “일본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한국 창업자... 관광객으론 괜찮지만 비즈니스라면 일본에선 필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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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아는기자들의 앞 첨언 :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면 항상 어쭙잖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두가지 조언을 얘기합니다. “일본이란 나라를 공부하세요” “오늘부터 일본어 배우세요.”
‘일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창업자가 일본어를 하나도 못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데는 깜짝 놀라곤 합니다. 미국 시장 진출하는데 영어 하나도 못하는 창업자? 아니면 베트남 진출하는데 현지어도 모르고, 베트남이란 나라 관련 책 한권 안 읽었다? 이상하잖아요.
이야기가 길어지면 한 마디 더합니다. “나중에라도 제발 어디가서 ‘일본 전문가’라고 하지 마세요.” 필리핀의 스타트업 창업가가 서울에 와서, 한국말도 못하면서, 한 2년 비즈니스했다고, 어느날 마닐라에서 ‘한국 비즈니스는 이것이다’라고 강연한다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어디까지 일본 전문가라고 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반대론, ‘진짜 일본 전문가를 만나는 방법을 찾으세요’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일본이란 나라를 타겟팅할때, 도움을 줄 사람을 찾는 일은 꽤 어렵습니다. 주변에서 일본 전문가라고, 심지어 무슨 컨설팅까지 하는 분인데, 정작 일본어 실력도 변변찮게 못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짜 전문가가 너무 많습니다. 감히 ‘미국에서 몇해 살았다고 미국 전문가’라는 사람은 없는데, 일본은 주재원 몇년만 하면 다들 일본 전문가랍니다.
연세대 권성주 교수는 일본 전문가가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을 잘 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유요? 일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는 참 따기 어렵습니다. 사실 석사도 어렵습니다. 그는 도쿄대 박사입니다. 경제학이 아니라, 국제정치학입니다만. 그는 몇년동안, Gateway to Korea라는 연세대 교육과정을 운영했습니다. 일본 대기업 주재원들의 서울 안착을 돕는 과정입니다. 일본 비즈니스맨에게 한국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권 교수가 이번에 Gateway to Japan을 개설한다고 합니다.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스타트업에게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네요. ‘이런 과정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쫌아는기자들이 감히 판단할 순없습니다. 하지만 궁금했습니다. 권 교수에게 기고를 청한 이유입니다.
권 교수의 기고에서 쫌아는기자들의 뇌리에는 “우리 눈에 부족해 보여도, 그들에게 충분하면 그곳에 수요는 없다. 우리 생활 습성상 불편해 보여도, 그들에게 불편하지 않으면 그곳에 비즈니스 찬스는 없다.”는 대목이 남습니다.
◇“일본 진출하는 스타트업에게 소개하는 ‘진짜’ 일본” - 권성주 교수
“네!?? 간사이(관서/関西)에서는 장어를 대가리를 둔 채로 등이 아닌 배를 갈라 굽는다구요?!!”
지난 겨울, 일본인 주재원들에게 인기 많은 거주지, 서울 마포구 공덕에 위치한 이자카야. 가까이 지내온 두 일본기업 사장들 간에 무언가 놀라운 발견을 한 듯한 대화가 오갔다.
맥도날드를 간토(관동/関東)에선 ‘막크(マック)’, 간사이에선 ‘마크도(マクド)’라 달리 줄여 부른다. 에스컬레이터 탈때, 간토는 왼쪽에 간사이는 오른쪽에 선다. 라디오, 전자레인지 등 전자기기의 주파수도 다르다. 간토와 간사이의 문화 차이는 일본인들은 다들 알기에, 그들끼린 더 이상 신기하지도 않은 주제이지만, 장어구이 굽는 방식 차이에는 두 일본인 사장들도 놀랐던 것이다. 옆 자리에서 대화를 듣던 규슈 출신의 일본 여성 주재원도 가세했다. 또 다른 것이다.
‘사실은 일본인 서로도 잘 모르는 다양한 일본’ 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주한(駐韓) 일본기업 주재원을 대상으로 한 최고위과정 ‘Gateway to Korea(GTK)’를 2016년에 설립해 매년 운영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사실은 서로를 잘 모른다’는 걸 깨달은 나에게 ‘일본인 끼리도 잘 모르는 일본’이라는 광경은 흥미로웠다.
일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교과서 속 일본, 공동의 기억 속 일본, ‘아픈 역사 속 가해자인 일본’ 등으로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그들을 단순화시켜왔을런지도 모른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동서로 넓게 펼쳐진 섬나라. 서로 다른 문화와 지역 고유의 삶이 있는 일본은 일본인들조차 서로 잘 모르는 다양성을 지녔다. 국내 여행을 선호하고, 여권 보유율이 우리의 절반을 밑도는(2023년말 기준 일본 인구 대비 여권 보유율 17% / 일본 외무성 여권 통계) 나라다.
일본을 우린 사실 잘 모른다. 북한을 제외하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국이고,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이고 언어적 유사성이 주는 친근감 탓에 잘 안다고 ‘착각’해왔을 뿐이다.
◇“일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그들을 너무 단순화시켜왔다”
일본을 여행객으로, 학자로 경험하며, ‘사실은 잘 몰랐던 일본’을 하나 하나 깨닫게 되는 과정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사업을 영위하겠다는 우리 기업이 그런 ‘착각’ 위에 일본 시장을 두드린다면 무조건 필패다. 기업의 실패는 개인에게, 가정에게, 국가에게 아픈 손실이다. 오는 10월,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에서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을 위해 ‘Gateway to Japan(’GTJ’)을 시작한다. 일본경제, 기업문화, 생활문화, 소비 트랜드 등 넓고 깊은 정보 제공의 장을 마련한 이유다.
다양성의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인식은 최근 들어 세대별 격차가 커졌다. 누구에겐 여전히 범접하기 힘든 경제대국이고, 누구에겐 곧 넘어설 수 있는 옛적 강국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일본 시장을 바라보는 우리 스타트업 구성원의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일본으로 인식하고 전혀 다른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게 우리의 시각 차이, 인식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일본, 철저히 일본인 관점으로 그들의 일상과 삶의 시스템을 보는 것이다.
우리 눈에 부족해 보여도, 그들에게 충분하면 그곳에 수요는 없다. 우리 생활 습성상 불편해 보여도, 그들에게 불편하지 않으면 그곳에 비즈니스 찬스는 없다. 한국 사회 시스템 상 자리 잡았어도, 일본의 오랜 제도상 바뀌기 어려운 영역이면 맨땅에 헤딩으로 머리만 다친다. 이제 우리 일상에 없으면 안될 만큼 빠르게 자리 잡은 국내 이커머스, 교육취미서비스, 딜리버리 서비스 등이 일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단 기간에 철수하는 사례를 적지않게 보아왔다. 우리 눈으로 분석한 우리 서비스의 ‘객관적 우위’는 일본 사회의 오랜 ‘주관적 편의’를 쉽게 넘지 못한다.
◇“일본에서 노쇼했다? 그들은 ‘메이와쿠’로 느낀다. 비즈니스는 거기서 끝”
흔히 일본 진출 우리 스타트업이 기술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비즈니스매너와 에티켓도 마찬가지다. 우리 관점으로 해석하고 공유되는 테크닉을 익히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을 알고 다른 모든 행위에 기본이 베여야 한다. 일본 비즈니스매너의 핵심엔 ‘메이와꾸(폐 / 迷惑)’문화가 있다. 일본인이 어릴 적부터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타인에게 폐 끼치지 마라(人に迷惑かけないで)’이다. 유년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주입된 인식은 비즈니스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형성되어 있다. ‘절대 지지 마라’가 되려 익숙하고, 치열한 국내 시장을 뚫어낸 우리 스타트업에게 그 인식은 얼마나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일례를 소개한다. GTK는 매해 한일 기업인 2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네트워킹파티를 비롯한 크고 작은 교류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때마다 불편한 진실을 접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참가자에게서 행사 당일에 오는 연락이다. 한국 참가자는 대부분 한 가지다. 꼭 참가하고 싶었는데 회사에(또는 집에) 급한 일이 생겨 못 오게 됐다는 연락이다. 사과의 표현은 넘치나, 대책은 없는 일방적 통지가 대부분이다. 여태껏 간간히 노쇼(No Show)도 있다.
일본 참가자의 행사 당일 연락은 두 가지다. OO분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죄송하다는 연락, 또는 돌발로 인해 참석이 어려워졌으니 본인에게 책정된 비용 부담을 하겠다는 연락이다. 사실 일본에선 이런 행사에서 실제 청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오랜 습성에 바탕한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내게 폐를 끼치는 상대는 친구로도, 비즈니스 파트너로도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관계가 길어지고 친숙해져도 그 기본엔 변함이 없다. ‘인간미 없다. 그럴 수도 있지’ 정도 생각이면 한국 시장에 만족하고 머무는 게 낫다.
◇“일본 비즈니스맨은 한국 진출하면 한국을 공부한다.. 한국 비즈니스맨은?”
다양성의 일본, 우리와 많이 다른 일본,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그런 일본을 정확히 알기 위해 그 나라에서 직접 겪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있을까만, 대부분 우리 스타트업에겐 일본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몸소 겪어낼 시간적, 자금적 여력이 없다.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의외로 우리 곁에 있다.
한국엔 수많은 일본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거의 모든 일본 기업들은 그 특유의 방식대로 여전히 본사 인원을 주재원으로 파견하고 있다. 규모는 차치하고, 일본이 대표투자국가로 등록된 법인이 전국에 2 700개가 넘고(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정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소재한 일본 기업의 유료 회원제 커뮤니티인 ‘서울재팬클럽(’SJC’)’ 회원사만 약 400 법인에 이른다. SJC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과 법인도 다수고, 부산에는 ‘부산재팬클럽(’부산일본인회’)’이 따로 있다.
세계 곳곳 한국인 모이는 곳에 코리아타운이 만들어지고, 중국인 밀집 지역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는 것과 달리, 재팬타운이 만들어지지 않는 일본인 특성상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과 주재원, 기업인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잘 모를 뿐이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내 곁에 있는 일본 글로벌 기업, 그 기업인들과 일본 진출 전부터 한국에서 교류하고 겪을 수 있다면, ‘착각’에 기반한 무모한 도전이 아닌, ‘진짜’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차별화된 네트워크에 기반한 전략적 진출이 가능할 것이다.
10월부터 4주 간의 압축과정으로 진행될 GTJ에서 일본기업인들과 서로의 차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합동 강좌를 열고, 수시로 교류의 장을 마련하며, IR 피칭데이로까지 연결하려는 이유다. CVC가 활성화된 일본 특성상, 한국에 있는 일본 글로벌기업과의 교류는 우리 스타트업에게 뿐 아니라 신사업과 새 성장동력을 찾는 일본 기업 서로에게 윈윈(win-win)의 기회가 될 거라 믿는다.
국제정치학자로서 ‘한일관계가 바뀌면 세계질서가 바뀐다’ 확신하고, 그를 위해선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민간 기반이 있어야 하며, 그 민간 기반은 단순 여행객의 증가가 아닌, 서로의 땅에 뿌리내리고, 서로의 국민을 채용하고 서로의 생활을 이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양국 기업이 늘어날 때 확고히 축적되어간다 믿는다. 연세대학교 GTK를 만들어 지난 8년 간 160여명의 일본 기업인들과 함께해오고, 그 기반 위에 올해 새로이 GTJ를 시작하는 이유다. 일본 시장으로의 진출과 더 큰 도전을 그리는 우리 스타트업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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