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안전 실종’…“납품 맞추려 비숙련공 무리한 투입”
23명이 숨진 아리셀 화재 참사 사고 원인은 자격도 없는 인력 공급업체로부터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해 무리하게 리튬전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구 설치 규정이나 노동자 안전교육 등도 하지 않는 등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본부(본부장 경무관 김종민)는 23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18명을 입건하고,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이자 운영총괄본부장인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아들 박아무개(35)씨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48)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박씨 등은 제조 공정의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32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는다.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도 화성시 전곡산업단지 내 입주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난 불로 23명(외국 국적 18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경찰은 아리셀이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근로자 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인력공급업체 ㈜메이셀로부터 노동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아 충분한 교육도 없이 주요 공정에 투입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리셀은 올해 1월11일 방위사업청과 34억원 규모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체결했고, 납품 일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지연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4월분 납품 배터리가 국방기술품질원 품질검사에서 국방규격 미달 판정으로 납품이 중단되자, 4~6월분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 5000개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제조 공정을 가동했다.
제조 과정에서 케이스 찌그러짐, 핀홀(실구명) 등 기존에 없었던 유형의 배터리 불량률이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공장 배터리 불량률은 3~4월 2.2%에서 5월 3.3%, 6월 6.5%로 늘어났다. 지난 5월16일 생산 배터리에서 미세단락으로 인한 발열현상이 최초로 발견됐다. 그런데도 6월8일부터 발열전지 선별 작업을 중단하고, 분리·보관해 오던 발열 전지도 정상 전지로 분류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리셀 쪽은 사고 이틀 전인 6월22일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원인 분석이나 적정한 조처 없이 생산라인을 계속 가동했다. 이 때 폭발했던 전지와 동일한 시점에 제조된 전지가 이틀 후인 6월24일 오전 9시19분께 3동 2층으로 이동했고, 1시간여 뒤 화재로 이어졌다.
아리셀에서 수거한 배터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정밀감식한 결과, 배터리 제조 공정에서 분리막 손상 또는 전해액 누액 등 내·외부적 요인으로 발열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지의 발열은 ‘미세단락 과정에서 발생한 전기적 발열에 기인된 것으로 화재와 관련이 있을 수 있고, 미세단락의 크기나 지속 조건에 따라 발열시점과 폭발 시점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얻었다.
경찰은 배터리 제조에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발열전지 및 케이스 불량에도 제품을 양산해 화재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위험물질 취급 공장인데도 관련 법령에서 정한 비상구 설치 및 노동자 안전·소방 교육을 준수하지 않아 화재 당시 인명 피해가 컸다고 지적했다. 화재가 발생한 3동 2층은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달하는 구조였고, 그중 일부는 피난 방향이 아닌 발화부 방향으로 열리도록 설치된 데다 보안장치까지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군납 과정에서는 ‘시료 바꿔치기’ 등의 부정행위를 통해 품질검사를 통과한 업무방해 혐의가 추가로 확인돼 계속 수사 중이다.
한편,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이날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아들 등 3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 대표 등이 화재 사고 이전 발생한 발열전지 폭발사고를 은폐하고,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 노동자 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지 않은 메이셀로부터 노동자 파견 대상 업무가 아닌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에 파견 노동자의 역무를 제공받은 혐의도 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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