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거사 묻은 윤, ‘유엔사 후방 기지’로 안보 몰방하나

권혁철 기자 2024. 8. 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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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지난해 8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사 주요직위자 초청 간담회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누리집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외교를 겨냥해 야당은 “몰역사적인 굴종외교”라고 비판한다.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과거사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자 유승민 전 의원은 “참으로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 과거사가 빠진 것에 대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김태효 차장을 질책했거나 문책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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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기울어진 한-일관계 인식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북한 위협에 맞서려면 한·미·일 안보협력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 작용한 탓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원래 이 믿음은 김태효 차장의 지론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하기 전부터 김 차장은 국가 존립이 걸린 안보 문제에서 한국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는 미국과 일본이 되어야 하며, 한·미·일이 북한 위협에 한 목소리로 대처하면 대북 억제력이 커지고 북한의 오판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는 한국이 일본과 안보협력으로 신뢰를 쌓으면 과거사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한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윤 대통령과 김 차장은 ‘대한민국 존립이 북핵 폭풍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협력만이 절대선, 최우선 과제이고 과거사는 그 다음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1월29일 일본 요코다 미 공군기지에서 열린 유엔사 후방기지 사령관 교체식에서 당시 빈센트 브룩스 유엔사령관(가운데)과 후방기지 장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행사장에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국기와 유엔 깃발이 걸려 있다. 미 공군 제공

윤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 이후 급속히 친일·친미쪽으로 기울어진 배경과 관련해 대통령실 기류에 밝은 한 인사는 “지난 8월19일치 조선일보의 김태효 차장 인터뷰 내용 중에 ‘유엔사 후방기지’를 눈여겨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에서 김태효 차장은 “한·미·일 협력이 북·러 밀착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있다”는 질문에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와 상관없이 북·중·러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미·일과 협력한다는 것은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한다는 의미다. 미국 본토 증원 전력이 도달하기 전에 급박하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 기지다. 일본의 적극적 협력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답했다.

김 차장 인터뷰를 주목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유엔사 후방기지의 중요성에 꽂혀 일본 과거사는 제쳐두고 한·미·일 안보협력에 다걸기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판단의 근거로 지난해 6월 이후 쏟아진 윤 대통령의 유엔사 관련 발언을 들었다.

“반국가 세력들은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 선언을 노래부르고 다녔다.”(2023년 6월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유엔사 후방기지 일곱 곳을 자동적으로 확보하는 플랫폼”(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식)

“유엔사는 한국을 방위하는 강력한 힘이고 반국가세력들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해왔다.”(8월10일 유엔사 주요 직위자 초청 간담회)

“일본이 유엔사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다.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되어 있으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 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는 곳이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사)

“유엔사는 대한민국을 방위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11월14일 한·유엔사 국방장관회의 축전)

유엔사 후방기지 7곳 이름과 위치. 유엔사 누리집

역대 대통령 중에 이렇게 유엔사를 집중적으로 언급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엔사의 양대 임무는 평시 한반도 정전협정 관리자와 유사시 전력 제공자이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전력제공자 임무 때 핵심 구실을 한다.

검사 시절 외교안보에 대한 식견이 깊지 않았던 윤 대통령이 취임 뒤 막강한 전력을 갖춘 유엔사 후방 기지를 접하자 `유레카’를 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군 중에서도 ”만약 유엔사 후방기지를 제대로 몰랐다면 한국 방위에 유엔사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89개 주일미군 기지 중에 지정된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은 일본 본토에 네 곳(요코다 공군기지, 자마 육군기지, 요코스카 해군기지, 사세보 해군기지), 오키나와에 세 곳(가데나 공군기지, 후텐마 해병 항공기지, 화이트비치 해군기지)이 있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 증원병력의 전개기지이고 주일미군의 한반도 출동기지, 유엔사 전력제공국의 군대와 장비물자가 전개하여 재편성하는 병참기지이자 전방전개 거점이 된다. 지난 2007년 당시 버웰 벨 유엔사령관은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 한국이 필요로 하는 미국 또는 다국적군의 한반도 전개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7월2일 일본 요코다 미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 수직 이착륙 수송기 CV-22B 오스프리가 비행하고 있다. 요코다 기지는 유엔사 후방기지 중의 하나다. 미 공군 제공

윤 대통령이 유엔사 후방기지를 안보 불안을 해결할 ‘만능키’로 뒤늦게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엔사 후방기지는 자칫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통로가 될 수 있어 한국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유기적 결합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요하다. 국방비서관 출신인 임기훈 국방대 총장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을 연결하는 실체적 고리”라며 “한반도 유사시 전력제공국 부대와 장비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는 한·미·일 3국간 군수 지원과 상호협력이 필수적이며, 유엔사 후방기지가 한·미·일 협력의 연결고리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에서 증원되는 미군은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중계기지로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도로, 항만 공항 등의 시설과 탄약, 급유, 정비 같은 군수지원을 받아야만 한반도로 병력과 장비를 보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로 출동하는 미군의 후방 지원과 경계 감시, 유류 등 군수 지원, 한반도 근처 바다의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 활동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위대가 한반도로 출동하는 미 해군을 호송하거나 군수물자를 싣고 따라 오게 되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문제는 지난 2015년 4월 미국과 일본이 새로운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합의됐을 때도 논란이 됐고 “한국 정부 사전 동의 없이는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정리됐다. 현재 자위대 한반도 진입은 ‘절대 불가’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동의하면 가능한 상황이다. 유엔사 후방기지, 주일미군, 일본이 상호 연계돼 있는 현실에서 “한·미·일 안보협력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확신하는 윤 대통령이 한반도 유사시 어떤 판단을 내릴까.

△인용 자료

‘유엔사의 재활성화 요인과 전략적 가치’(임기훈, 국방대)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의 전략적 가치 고찰’(박종근·방준영, 한일군사문화학회)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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