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기간병들, 죽은 공작원 기름에 튀기고 조각내 태우기도” [인터뷰 ⑤]
“20대 초반 기간병들, 약자에 악마적 군림
소설 다시 쓴다면 기간병 악행 더 부각할 것”

23일은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 지 53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김일성 암살을 위해 극비리에 만든 특수부대의 공작원들은 섬을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탈취하고 서울 청와대로 진격하다 자폭했다. 반세기 만인 오는 9~10월께 국방부 장관은 이 사건과 관련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사과는 경기도 벽제리 공동묘지에서 열리는 사형집행자 유해발굴 개토제 때 ‘국방부 간부의 대독’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방부 쪽은 사과 내용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라고만 밝혔지만, 모호하고 형식적인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실미도 사건은 불법 모집에서부터 훈련 중 인권침해, 부식비 횡령, 사형집행 및 암매장 등 처음부터 끝까지 최악의 국가범죄였다. 만약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모조리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면 이 역시 사과해야 할 범죄에 해당한다. 한겨레는 실미도 사건 53주년과 국방부 장관의 사과 발표를 앞두고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공작원(훈련병) 생존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다시 소설 쓰면 기간병 악행 더 부각하고파
― 기간병도 피해자 아닌가?
“맞다. 하지만 피해자이되 잔인한 피해자였다. 통제받지 않은 권력은 인간을 악마로 만든다. 기간병들은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공작원들을 경멸했다. 나는 끝까지 기간병을 적대시하는 공작원 입장에 섰다. 소설 실미도를 개작한다면 기간병들의 악행을 더 부각하고 싶다. 20대 초반의 애송이 기간병들이 약자에 군림했던 모습이 치기 어리면서 악마적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약자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면 매우 잔혹해진다. 그걸 더 까발려 보여주고 싶다. 그들은 무의도에서 강간 사건을 저지른 공작원 3명을 다 때려죽이게 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강간 사건은 힘으로 눌러 드러나지 않게 했다.”

실미도에서 7명의 공작원은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군기를 어기고 잡혀 온 공작원들은 교육대장의 지시에 따라 동료 공작원들에게 맞아 죽었고, 죽은 뒤엔 드럼통에 디젤 기름으로 튀겨졌다. 화장하는 도중 비가 내리자 빨리 처리하라는 명령에 의해 공작원들은 동료의 시신을 칼로 발라내고 조각내 태우기도 했다. 이는 모두 유한양행 앞에서 체포된 4명이 사형당하기 전 남긴 증언이다.
결국 남은 공작원들은 실미도에서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나중에 사형집행된 임성빈은 ‘탈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입대 전 약속과 너무 다른 인간 이하의 대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생각하는 교육대장과 교관들의 태도, 구타에 대한 증오심, 4년 가까이 격리 수용되어 외출 한 번 서신 연락조차 허락되지 않는 유배생활로 불만 누적된 상태에서 소주 사건(민간인에게 얻은 소주를 나누어 마시다 발각)으로 나이 많은 A조장을 훨씬 어린 소대장이 구타하여 눕게 한 것이 직접적 동기.”

10년 뇌졸중 투병…고하도 생체실험 소설 집필중
― 어떻게 지내나.
“뇌졸중에 걸려 10여년 투병생활 했다. 지금은 괜찮다. 2004년부터 나주에서 가까운 광주의 시골 마을에 있던 2층 법당을 살림집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다. 1980년대 교도소에서 쌍둥이 형을 만난 뒤 내 인생이 바뀌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그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온 거였다. 지금은 일제 강점기 시절 목포 인근 고하도에서 벌어진 일제의 생체실험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1999년에 나온 소설 ‘실미도’ 1·2권은, 작가 말에 따르면 50만부 넘게 팔렸다. 사회고발 소설이지만 일종의 무협소설에 더 가깝다. 주인공 백동호를 교도소에서 만나는 강인찬은 파란만장한 ‘협객’으로 그려졌다. 물론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이 입혀진 부분이다. 백 작가는 그가 실미도를 탈출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다. 검증할 길이 없다. 오로지 작가의 양심에 달린 문제다. 그럼에도 이 증언은 자꾸만 끌린다. 백 작가가 실미도를 한국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해서가 아니라, 실미도 공작원이 다 죽었다는 국방부의 발표가 그만큼 개연성이 없고 국방부 과거사위의 조사 역시 한계가 많았기 때문이다. (끝)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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