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한주와 송절주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근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서울의 4대 명주라면 대개 삼해약주, 향온주, 삼해소주 그리고 송절주를 꼽는다.
송절주(松節酒)는 조선시대부터 널리 빚어 마시던 전통 민속주다. 딱히 특정 지역만의 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서울 부근 중산층에서 주로 많이 마셨던 술이다.
송절주의 유래는 정확히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동의보감', '고사십이집',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부인필지 등 고서에 술빚는 법이 나와 있어 조선시대에 많이 마셨고 특히 소나무와 그 향기의 상징적 의미 때문에 선비들이 많이 즐긴 술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시대 금주령을 가장 많이 내렸던 영조는 하반신 관절이 약했기에 송절주를 마셨고 금주령 기간에는 송절차를 마셨는데 실은 그 또한 송절주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충경공 이정란의 가양주로 내려오다 14대손 이필승의 처 허성산(許城山 1892∼1967) 여사가 시댁에서 내려오던 송절주를 빚었고 그 주조법을 다시 며느리인 박아지(朴阿只) 여사가 이어받았다.
1989년 송절주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면서 박아지 여사가 송절주 술빚기 기능보유자로 지정됐고 1991년에 보유자가 별세해 며느리인 이성자 여사가 기능보유자로 다시 지정됐다.
현재는 이성자 여사의 며느리인 박민정 씨가 전수받고 있다.
박민정 씨는 디자이너, 요리사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송절주 전승과 연구를 하고 생산법인인 한주양조의 제품개발, 디자인업무를 맡고 있다. 이 여사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주양조에서는 송절주에서 기원한 '한주' (汗酒)'를 함께 생산하고 있다.
송절주는 싱싱한 송절(松節 소나무 마디)을 삶은 물인 송절물에 멥쌀, 찹쌀, 누룩을 넣어 빚고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국화, 겨울엔 유자껍질, 귤껍질 등을 함께 넣어 계절색을 더하기도 한다.
집안의 가양주답게 필요한 약재를 넣어 송절의 약효를 끌어올린 약용주(藥用酒)다.
국순당이 송절주를 복권해 판매하고 있지만 전통 그대로 빚은 술은 아니고 현대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송절의 양을 많이 줄였다는데 그 이유는 송절이 많을수록 쓴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란다. 또한 옛날에는 송절을 달이면 나오는 진액으로 술을 빚었는데 현재는 송절을 그대로 쌀에 넣어 발효하며 그 성분이 추출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송절주 기능보유자인 이성자 여사가 운영하는 한주양조에서는 2025년에 송절주를 다시 빚어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원래 피아니스트였던 이성자 여사는 서울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중대 부속 여중과 계원예고에서 18년간 음악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다 시어머니 박아지 여사가 돌아가신 후 1992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적극적 권유와 지원으로 전통 방식으로 송절주 빚기에 나섰다.
그가 전수받은 전통방식은 '로주두말빚이'라는 술 빚는 기법이다. 쌀로 빚어 만든 술을 한 방울씩 이슬을 받아내듯 정성을 들여 만드는 전통주의 주조방식이다.
이 여사는 이렇게 증류한 술로 조선시대의 명주인 한주 생산에 성공했다. 1994년에 한주양조를 설립하고 전통주 생산과 전통주 알리기에 지금까지 힘쓰고 있다.
한주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철저한 고증으로 한국의 정취에 가장 알맞은 민속주로 승인받기도 했다.
호리병을 보면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가 그려져 있다. 매화는 시인이나 묵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화를 '호문목'(好文木)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꽃이 시객의 친구처럼 잘 지내왔고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한주매화 주병은 매화의 꽃말인 고귀한 마음과 기품, 인내를 담아 여주의 이광희 도예가가 한 병씩 손수 그린 작품이다.
한주가 담긴 병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미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45도는 한주명작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한주명작은 병으로 이석용 도예가의 작품을 사용했고 수제로 만든 결정유 도자기를 썼다. 꽃무늬, 별무늬와 같은 비규칙적인 결정유 모습으로 한국의 보름달을 깊이 있게 표현했으며 45도짜리 한주를 담아 소장 가치를 더욱 높였다.
송절주와 한주는 이러한 과정으로 서울의 명주로 자리를 잡았고 가양주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명인의 후손이 한마음을 모아 전승되고 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o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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