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세 친구, 서로의 비밀 품어주며 ‘삶의 빛’ 찾아[북리뷰]
김애란 지음│문학동네
김애란, 13년만에 새 장편
비극적 운명 처한 고교생들
미스터리 형식의 성장 소설
“고난 거듭되는 인생이지만
우애·이해로 치유할 수있어”
김애란 신작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드디어 나왔다. 장편소설로는 ‘두근두근 내 인생’(2011·창비) 이후 13년 만이다. 소설집 ‘바깥은 여름’(2017·문학동네)으로부터도 7년이 지났다. 왜 이리 격조하냐고 따지고 싶지만, 울컥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빛과 거짓말 그리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중이라고 말해 왔는데, 과연 제목에 ‘거짓말’이란 말이 들어 있다.
소설의 배경은 K시,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뒤섞인 지방 소도시다. 중심인물은 지우, 소리, 채운.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학생들이다. 작품 제목은 담임이 개발한 자기소개 게임에서 따왔다. “규칙은 간단해.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힐 거고. 나머지 네 개는 자연스레 참이 되겠지?”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진실만으로 구성할 순 없다. 감추고 싶은 건 가리고, 자랑하고 싶은 건 과장하고, 바라는 모습은 덧대서 말한다. 그 틈과 거리가 모두가 안고 사는 거짓이 된다. 세 아이도 마찬가지다. 남들한테 도무지 말하고 싶지 않은, 또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작품은 세 아이가 교대로 화자를 맡아 자신과 타인의 삶에 깔린 비밀을 조금씩 밝혀가며 이해와 우애를 더하는 미스터리 성장소설 형식을 띤다.
“이제부터 우리 좋은 직선을 그려보자.” 김애란 특유의 문장 감각, 즉 군살은 전혀 없고 의미는 풍요로운 상징적 문장이 작품 전체의 격조를 끌어올린다. 그러나 운명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물어뜯긴 어린 세 영혼이 어둠의 인생길을 반듯이 걸어 빛에 이르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그 자체가 거짓처럼 느껴질 터이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고 좌절이 극복으로 바뀌는 이야기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인생 역전은 영웅 같은 특별한 이들의 서사가 아닐까.
세 아이는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꿈꾸나,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는” 세상은 안정과 평화를 허락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송이는 단단한 둥지를 가진 이들에겐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눈도 취약한 이들에겐 추위에 매서움을 더하는 재난이 된다.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가부장제 정상 가족은 그 빛의 서사를 복구하는 데 실패했다. 세 아이 모두 잇따른 비극에 직선주로를 이탈했다. 지우의 아버지는 오래전 소식이 끊겼고, 어머니는 뇌암 판정 이후 바다에 실족해 죽었다. 반려 도마뱀 용식과 함께 지우는 엄마 애인 선호에게 얹혀산다. 지우는 엄마를 의심한다. ‘엄마가 날 버린 걸까?’ 지우는 겨울방학 동안 ‘숙식 노가다’로 돈을 모아 용식과 함께 독립하는 게 꿈이다.
소리 역시 어머니를 사고사로 잃었다. 그녀에겐 신비한 능력이 있다. 손을 맞잡으면 그 사람의 닥쳐온 죽음을 알 수 있는 것. 그래서 누군가 손을 잡으면 덜컥 그 죽음을 알까 봐 두렵다. 그녀는 타인과 접촉하지 않으려 항상 그림을 그리며 외톨이로 살아간다. 평소 지우가 부러워했던 채운의 가족은 더 끔찍하게 파괴됐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는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있고, 엄마는 교도소에 들어갔다. 채운은 반려견 뭉치와 함께 이모네 집에 들어가서 눈칫밥을 먹는다.
위태로운 세 아이는 소리를 징검다리 삼아 이어진다. 지우는 노가다하는 동안 용식을 소리에게 맡기고, 채운은 뭉치 덕분에 우연히 친해진 소리를 통해 지우의 웹툰 ‘내가 본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만화에 자기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알고는 불안에 떤다. “엄마, 걔가 뭘 본 것 같아.”
인생의 선을 그어갈 때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은 빼앗기는 일”은 한없이 반복된다. “틈만 나면 서로 속이고 거짓말하고 등쳐먹으려”는 세상에서 세 아이는 좋은 삶을 복구할 수 있을까. 만화의 네모 칸처럼, 세 아이는 뭉개진 삶의 울타리를 반듯이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작가는 고난이 거듭되는 인생에서 “어두운 하늘 한 곳을 쓱 문지르자, 그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습니다”라는 기적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친구, 동거인, 반려동물 등 대가 없이 손 내밀고 서로를 돌보는 작은 우애의 공동체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무너진 삶을 되살릴 수 있다. 삶이란 서로를 잇는 친밀성과 연대의 선들을 그어가며 재난에 맞서는 것일 테다. 별로 어렵지 않고 거짓말처럼 쉽다. 240쪽, 1만6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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