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왔다” 파월 의장 ‘잭슨홀 미팅’서 9월 금리인하 시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8월 23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잭슨홀 미팅(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9월 금리인하를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정책) 여정의 방향은 분명하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 가능하게 목표치 2%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은 줄었다. 동시에 고용에 대한 하방(둔화) 위험도 증가했다"고 말하며 정책의 초점이 물가에서 고용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어 "우리는 물가 안정을 향한 진전을 이루면서 강력한 노동 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 인하 폭과 속도 등에 대해선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금리를 인하하는 타이밍과 속도는 향후 데이터, 경제전망 그리고 리스크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9월 6일 발표되는 8월 고용보고서에서 미국의 일자리 둔화세가 확인되면 이른바 '빅컷' 즉 0.50%p 금리인하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파월 의장의 기조연설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미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3.97p(1.15%) 오른 5,634.61, 나스닥지수는 258.44p(1.47%) 오른 17,877.79에 거래를 마쳤다. 금과 가상자산도 강세를 보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제 금 현물은 이날 장 중 전장보다 1.2% 상승해 온스당 2512.63달러에 거래됐다.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8월 23일 6만∼6만1000달러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파월 의장 연설 이후 6만4000달러대까지 급등했다.
2022년 잭슨홀 연설 후 금리 7차례 올린 파월
앞서 8월 초 미국발(發)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글로벌 증시를 뒤흔든 이후 세계의 시서는 8월 22~24일로 예정돼 있던 잭슨홀 미팅으로 향했다. 미국 노동부가 8월 2일 발표한 미국 7월 실업률이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비농업 일자리 수도 시장 전망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7월 30~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5.25~5.50%)으로 유지하지만 9월 17~18일 FOMC 정례회의 때는 금리인하에 돌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잭슨홀 미팅 기조연설에서 어떤 발언을 내놓을까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잭슨홀(Jackson Hole)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옐로스톤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와이오밍주의 한적한 산골 마을이다. 로키산맥 지류인 그로스벤터산맥과 티턴산맥 사이의 해발 2000m 높이 골짜기에 자리한다. 인구가 1만 명에 불과한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미 연준을 구성하는 12개 연방준비은행 가운데 하나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1982년부터 매년 8월 주최해온 잭슨홀 미팅 때문이다. 잭슨홀 미팅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 경제학자,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모여 재정·통화 정책에 관해 토론하며 세계경제를 진단하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이다. 올해는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파월 의장은 2022년 이곳에서 메가톤급 발언을 한 바 있다. 당시 파월 의장은 물가가 안정 조짐을 보임에 따라 금리를 이미 4차례나 올린 연준이 금리인하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장 기대와 달리 "가계와 기업에 어느 정도 고통을 가져오겠지만 물가가 통제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말해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연준은 기준금리를 7차례나 더 올렸다.
잭슨홀 미팅에서는 과거에도 핵폭탄급 발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2005년에는 인도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미국 경제의 거품을 경고했다.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던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비판했지만, 2년 뒤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이곳에서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말한 뒤 양적완화 확대와 제로금리 정책을 탄생시켰다.
당초 금리인하 폭에 관해 말 아낄 것이라는 관측
일단 잭슨홀 미팅이 열리기 하루 전인 8월 21일 공개된 7월 FOMC 회의록은 9월 금리인하 기정사실화에 힘을 실었다. 연준 위원 대부분이 "9월에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미국 노동부가 3월 발표한 지난 1년간 비농업 일자리 수 증가를 290만 명에서 81만8000명 줄어든 208만2000명이라고 수정 보고한 것이 근거가 됐다. 미국 노동시장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심각하게 둔화하고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금리인하 폭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9월 FOMC 정례회의 전에 나오는 7월 개인소비지출(PCE), 8월 고용지표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확인하지 않고 금리인하 속도를 언급하는 것이 너무 성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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