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대응 못 하는 건 '인권 침해'? 유럽은 그렇다는데 우리나라 상황은 [스프]

안혜민 기자 2024. 8. 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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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폭염과 열대야2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2024년 여름 폭염과 열대야가 어느 정도 상황인건지 기상청 데이터를 통해 정리해봤습니다. 2편에서는 기후재난으로서 폭염이 얼마나 위험한지 살펴보겠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3wpBK6l057H ]
 

폭염이 위험한 이유... 폭염은 생존의 문제

폭염이 매년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폭염을 단순히 '많이 더운 날씨'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가볍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 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적정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폭염은 이걸 망가뜨리기 때문이죠.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이 닥쳤을 때 열사병을 포함해 온열질환자만 무려 4,526명 발생했습니다. 이 중 48명이 사망하면서 정부도 폭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했어요. 2018년 재난안전법이 개정되면서 폭염도 이제는 자연재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폭염은 자연재해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재난입니다.

폭염 관리의 일환으로 질병관리청에선 여름철(5월 ~ 9월)에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년 여름철에는 매일매일 온열질환 발생현황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죠. 아래 그래프는 질병관리청에 보고된 여름철 온열질환자 규모를 나타낸 자료입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공개된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어요. 폭염일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온열질환자 규모가 늘어나는 것 보이죠? 지난해엔 5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총 2,81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올해는 8월 21일 16시 기준으로 총 2,994명의 온열질환자가 신고되었습니다. 이미 작년 수치를 넘어섰어요.


특히 폭염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고령층, 남성, 그리고 단순노무종사자였습니다. 2023년 온열질환자 발생자를 분석해 보면, 50대가 전체 환자의 21.3%로 가장 많았죠. 뒤이어 60대가 18.2%, 40대가 12.7%였고요. 전체 온열질환자 중 50대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0.6%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온열질환자를 계산하면 80세 이상이 11.5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성별로 따져보면 남성이 2,192명으로 77.8%를 차지했습니다. 단순노무종사자가 전체 환자 중 21.0%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무직 12.1%, 농립어업종사자가 8.8%였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피해자 규모가 더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온열질환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발생하는 사망자(초과사망자)도 상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과거 질병관리청에선 2018년 폭염에서 발생한 초과사망자 규모를 790명으로 추정했습니다. 직접적인 온열질환 사망자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초과사망자 규모까지 생각한다면 폭염의 위험성은 더 커질 수 있어요.

참고로 일본에서는 온열질환으로 의심돼 병원으로 이송되어 사망할 경우, 온열질환 사망자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진에 의해 온열질환으로 진단명이 확인된 경우에만 사망자 통계에 넣고 있고요. 전문가들은 극한의 폭염이 잦아질 미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과소 집계보다는 과다 집계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하고 있습니다.
 

생존 한계의 '습한 폭염'이 이미 눈앞에?

폭염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늘어나는 습도입니다. 올해 폭염이 다른 폭염과 비교해서 폭염일수는 적지만 그만큼 힘든 이유도 역시 습도에 있습니다. 습도가 높을 때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문제, 바로 땀이 마르질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적정 체온 36.8℃를 조절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땀 증발이거든요. 그런데 외부 습도가 높다면 어떻게 될까요? 땀이 증발되질 않으니 체온 조절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른 더위보다 습한 더위가 더 위험하죠.

습도와 기온을 함께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습구온도(WBT)라는 게 있습니다. 습구온도란 말 그대로 습구(습한 구체, Wet Bulb)의 온도를 의미합니다. 온도계 수은주 끝을 물에 적신 솜으로 감싸 측정한 온도인거죠. 인간이 생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습구온도 한계치는 35℃ 정도입니다. 습구온도 35℃에서는 땀으로 체온을 식힐 수 없어서 최대 6시간 정도만 생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죠.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우리들이 습구온도 35℃의 환경을 만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상정하고 모델을 돌려보면, 21세기 중반 즈음정도 되면 그런 상황이 닥칠 것으로 예측했었고요. 그런데 웬걸요? 이미 습구온도 35℃가 관측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연구진은 전 세계 4,576개의 기상관측소 자료를 가지고, 각 지역별로 습구온도의 최댓값과 최솟값을 분석해 봤습니다. 분석해 보니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 페르시아만과 홍해 지역에서 이미 35℃가 넘는 최대 습구온도가 관측되었죠. 위 지도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최대 습구온도 35도를 넘긴 지역들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습구온도를 기록한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 지역으로, 최대 습구온도 36.5℃를 기록했어요.

뿐만 아니라 습한 폭염의 빈도는 과거에 비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1979년 이후 습구온도 30℃를 넘긴 극한의 습한 폭염 빈도는 2017년에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 연구진은 멕시코만, 캘리포니아만, 서아프리카, 남중국 지역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좋게 보긴 어려워요. 지도에도 나와있듯 이미 붉은빛의 최대 습구온도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고요. 계속해서 해수면 온도는 올라가면서, 바다에서 증발되는 수증기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는 과거보다 더 많은 습기가 가득할 테고, 그렇게 되면 올해 여름과 같이 덥고 습한 폭염이 잦아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한반도 해역의 온도는 표층 수온을 관측한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 "폭염 대응 부족은 인권 침해"

미국 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지난 7월은 관측 사상 가장 더운 7월이었습니다. '관측 사상 가장 더운'이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게, 이미 14개월 연속으로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달이 이어지고 있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극한 폭염도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폭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특히 폭염 피해를 직격으로 맞는 고령층과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강화해야 할 겁니다.

유럽에선 움직이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행동에 나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2,500명가량의 회원을 자랑하는 스위스 고령 여성 협회가 그 주인공이죠. 협회는 유럽의 폭염 사태로 인해 고령 여성들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삶과 복지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협회는 스위스 당국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은 탓에 인권이 침해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어요. 2016년 스위스 법원에선 증거 부족으로 기각되었지만, 유럽인권재판소에선 지난 4월에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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