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보다 '보여주기'가 중요한 나라, 북한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8. 23. 09:03
[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이재민 시설에서 드러난 '북한 행정력의 민낯'
지난 16일 평양에서 수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모임이 진행됐습니다. 평양에는 지난 15일부터 압록강 수해로 집과 터전을 잃은 평안북도와 양강도, 자강도의 아이들이 일부 올라와 있는데, 이들에게 교복과 학용품, 책가방, 신발 등을 선물하는 행사가 열린 것입니다.
행사는 이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4.25 여관' 앞에서 진행됐고 조용원, 박정천, 박태성 등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과 간부들, 평양에 올라온 아이들과 학부모 등 수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건물 앞에 도열한 수천 명의 아이들과 학부모들 앞에 이들에게 전달될 책가방과 학용품 등이 가득 전시돼 있습니다.
선물 전달사를 한 조용원 조직비서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생활과 교육 문제는 아버지 원수님(김정은)께서 이번 재해 복구 사업을 지도하시며 제일로 관심하시고 마음 쓰시는 문제"라면서, "수해 지역 아이들을 한 점의 그늘 없이 더 밝고 환하게 내세우시려는 뜨거운 진정이 교복과 학용품, 책가방, 신발을 비롯한 갖가지 선물들마다에 어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연설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도열해있던 아이와 어머니들이 차례차례 앞으로 나와 책가방과 학용품 등 선물을 하나하나 받았습니다. 수해로 모든 것을 잃고 평양에 와 있는 아이들과 어머니 입장에서 국가가 무상으로 지급해 주는 학교 생활용품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식의 선물 지급은 반드시 광장 앞에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질적인 선물 지급이 목적이라면 선물지급센터를 마련해 놓고 아무 때나 선물을 받아 갈 수 있게 한다든가, 이재민 숙소의 각 방을 찾아다니며 선물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굳이 숙소 앞 광장에 수천 명을 모아놓고 연설을 듣게 하고 선물을 일일이 지급받게 하는 고생을 시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는 것은 선물 지급도 지급이지만 북한 당국에게는 김정은의 은덕을 생색낼 수 있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해 국면에서 북한의 '보여주기식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압록강 수해가 발생한 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9일 수해 지역을 다시 찾았습니다. 김정은은 당시 전용열차를 타고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를 찾았는데, 전용열차에는 수재민들에게 지원할 물자가 실려 있었습니다.
수재 지원 물자라면 한시라도 빨리 수재민들에게 전달하는 게 필요했겠지만, 북한에게는 '행사'가 필요했습니다. 김정은의 애민 이미지를 선전할 '보여주기식 행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의 전용열차가 정차하는 곳 앞으로 수백 명의 수재민을 불러 모았습니다. 열차 앞 들판은 청중석으로 변했고, 김정은은 전용열차에 마련된 임시 연단에서 '인민 사랑'의 대연설을 했습니다. 수재민들에게 지원 물자가 전달된 것은 그다음이었는데, 이날 행사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북한 전역으로 전파됐습니다.
지난 15일 평양 '4.25 여관' 앞에서 진행된 행사 또한 북한이 '보여주기식 행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김정은이 수해 지역의 학생, 연로자, 병약자, 영예군인(상이군인), 어린이 보호자 등을 평양에 수용하기로 하면서, 지난 15일 평양 '4.25 여관'에는 1만 3천여 명의 수재민들이 도착했습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더운 여름날 지방에서 올라온 수재민들이 '4.25 여관' 앞 광장에 도열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장에는 김정은을 위한 연단이 마련됐습니다. 김정은이 높은 위치에서 수재민들을 바라보며 연설할 수 있도록 연단이 준비된 것입니다.
이 연단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었을까?
바로 다음 날인 16일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고위 간부들의 선물 전달 모임'과 비교해 보면 김정은의 연단은 임시로 설치됐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일 행사 때에는 있었던 연단이 하루 뒤인 16일에는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수재민 맞이 행사를 위해 임시 연단을 만들었다가 하루 만에 철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은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를 위해 북한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최고지도자를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에 집중하게 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오히려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의 행사를 그럴싸하게 치르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버리면, 간부들은 수재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보다 김정은을 위한 의전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하나라도 더 전해줄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김정은을 위한 임시 연단을 만드는 데 그나마 부족한 국가 자원을 소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장에서는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가 전달되고 있지만,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수재민들에게도 구호물자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북한식 현지 지도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최고지도자가 신경 쓰는 곳에만 물자 공급이 원활해진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보여주기식 행사'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북한 행정력의 민낯이 있습니다.
지난 8일 김정은은 수재민들의 임시 수용시설을 방문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방문하는 자리였던 만큼 북한 나름으로는 잘 정돈된 시설을 공개했을 것 같은데, 수재민 수용시설은 운동장 가운데에 집단적으로 쳐 놓은 대형 천막시설이었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운동장 한가운데에 설치한 임시 천막이라니... 한낮에 해가 뜨면 천막 안이 얼마나 더울지 생각하기도 끔찍합니다. 이재민들을 만나러 온 김정은도 더워서 상의의 단추를 푸는 상황. 북한이 공개한 화면을 보면 대형 천막 하나에 적어도 2∼3가족, 10∼15명은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운동장에 임시 시설을 마련할 정도면 제대로 씻을 여건도 돼 있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지난 16일 평양에서 수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모임이 진행됐습니다. 평양에는 지난 15일부터 압록강 수해로 집과 터전을 잃은 평안북도와 양강도, 자강도의 아이들이 일부 올라와 있는데, 이들에게 교복과 학용품, 책가방, 신발 등을 선물하는 행사가 열린 것입니다.
행사는 이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4.25 여관' 앞에서 진행됐고 조용원, 박정천, 박태성 등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과 간부들, 평양에 올라온 아이들과 학부모 등 수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건물 앞에 도열한 수천 명의 아이들과 학부모들 앞에 이들에게 전달될 책가방과 학용품 등이 가득 전시돼 있습니다.
선물 전달사를 한 조용원 조직비서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생활과 교육 문제는 아버지 원수님(김정은)께서 이번 재해 복구 사업을 지도하시며 제일로 관심하시고 마음 쓰시는 문제"라면서, "수해 지역 아이들을 한 점의 그늘 없이 더 밝고 환하게 내세우시려는 뜨거운 진정이 교복과 학용품, 책가방, 신발을 비롯한 갖가지 선물들마다에 어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연설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도열해있던 아이와 어머니들이 차례차례 앞으로 나와 책가방과 학용품 등 선물을 하나하나 받았습니다. 수해로 모든 것을 잃고 평양에 와 있는 아이들과 어머니 입장에서 국가가 무상으로 지급해 주는 학교 생활용품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을 것입니다.
북한의 '보여주기식' 행사들
수해 국면에서 북한의 '보여주기식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압록강 수해가 발생한 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9일 수해 지역을 다시 찾았습니다. 김정은은 당시 전용열차를 타고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를 찾았는데, 전용열차에는 수재민들에게 지원할 물자가 실려 있었습니다.
수재 지원 물자라면 한시라도 빨리 수재민들에게 전달하는 게 필요했겠지만, 북한에게는 '행사'가 필요했습니다. 김정은의 애민 이미지를 선전할 '보여주기식 행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의 전용열차가 정차하는 곳 앞으로 수백 명의 수재민을 불러 모았습니다. 열차 앞 들판은 청중석으로 변했고, 김정은은 전용열차에 마련된 임시 연단에서 '인민 사랑'의 대연설을 했습니다. 수재민들에게 지원 물자가 전달된 것은 그다음이었는데, 이날 행사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북한 전역으로 전파됐습니다.
지난 15일 평양 '4.25 여관' 앞에서 진행된 행사 또한 북한이 '보여주기식 행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김정은이 수해 지역의 학생, 연로자, 병약자, 영예군인(상이군인), 어린이 보호자 등을 평양에 수용하기로 하면서, 지난 15일 평양 '4.25 여관'에는 1만 3천여 명의 수재민들이 도착했습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더운 여름날 지방에서 올라온 수재민들이 '4.25 여관' 앞 광장에 도열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장에는 김정은을 위한 연단이 마련됐습니다. 김정은이 높은 위치에서 수재민들을 바라보며 연설할 수 있도록 연단이 준비된 것입니다.
이 연단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었을까?
바로 다음 날인 16일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고위 간부들의 선물 전달 모임'과 비교해 보면 김정은의 연단은 임시로 설치됐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일 행사 때에는 있었던 연단이 하루 뒤인 16일에는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수재민 맞이 행사를 위해 임시 연단을 만들었다가 하루 만에 철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은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를 위해 북한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사'에 집중하면 실질 조치는 뒤로 밀려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장에서는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가 전달되고 있지만,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수재민들에게도 구호물자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북한식 현지 지도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최고지도자가 신경 쓰는 곳에만 물자 공급이 원활해진다는 점입니다.
이재민 수용시설에서 드러나는 '북한 행정력의 민낯'
지난 8일 김정은은 수재민들의 임시 수용시설을 방문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방문하는 자리였던 만큼 북한 나름으로는 잘 정돈된 시설을 공개했을 것 같은데, 수재민 수용시설은 운동장 가운데에 집단적으로 쳐 놓은 대형 천막시설이었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운동장 한가운데에 설치한 임시 천막이라니... 한낮에 해가 뜨면 천막 안이 얼마나 더울지 생각하기도 끔찍합니다. 이재민들을 만나러 온 김정은도 더워서 상의의 단추를 푸는 상황. 북한이 공개한 화면을 보면 대형 천막 하나에 적어도 2∼3가족, 10∼15명은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운동장에 임시 시설을 마련할 정도면 제대로 씻을 여건도 돼 있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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