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독일차’ 속살은 ‘중국차?’”...벤츠의 추락

2024. 8. 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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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재 사건 계기로 무너진 고급 이미지
대다수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 탑재까지 논란
미운털 박히며 내연기관차 판매도 악영향 예상

[비즈니스 포커스]

현재 벤츠코리아는 전기차 고객들을 대상으로 무상 점검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차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부 전기차주들은 “벤츠가 소비자를 기망했다”며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3개의 독일 브랜드 차량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독 3사’라는 별칭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몇 해 전 더 이상 독 3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어렵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BMW, 벤츠와 동일선상에 놓기가 무색할 만큼 아우디의 판매량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아우디의 몰락’이 시작된 건 2016부터다.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태로 한국 정부가 아우디 차량 50여 개 모델의 인증을 취소하고 국내 판매를 중단시켰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보여줬던 아우디의 안일한 대처는 국내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차량 구매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게 최대 1200만원의 배상금을 주기로 합의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겐 고작 100만원짜리 쿠폰을 건네며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마저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국 정부와 날 선 법정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아우디를 향해 ‘한국 소비자는 봉이냐’와 같은 질타들이 쏟아졌던 이유다. 2017년 11월 아우디는 국내 판매를 재개했지만 당시 덧씌워진 부도덕한 기업 이미지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과 달리 아우디는 한국에서 유독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수입차 업계에서는 벤츠가 ‘제2의 아우디’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규모 피해를 낳은 인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때문이다. 

신속하지 못한 대처뿐 아니라 벤츠의 전기차 대부분이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벤츠를 향한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벤츠가 오랜 기간 쌓아온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지난해 BMW에 빼앗겼던 수입차 판매 1위 왕좌를 탈환하겠다던 벤츠의 올해 목표도 요원해진 모습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실추

전기차 화재 사건이 터지면서 벤츠를 향한 국내 소비자들의 비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벤츠를 비하해 ‘짱츠’(중국산+벤츠)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만큼 그간 쌓아온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됐다.

가장 큰 이유는 벤츠 전기차 대부분이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 꼽힌다. 중국산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제품에 비해 20~30% 이상 가격이 낮다.

이번에 전기차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그 결과 벤츠 전기차의 중국산 배터리 사용 비율은 약 90%로 나타났다. 반면 BMW를 비롯해 현대자동차·기아가 80~90% 비율로 국산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논란을 키운 건 벤츠가 일부 모델에 중국 현지에서도 비주류로 취급받는 배터리 제조사인 파라시스의 제품을 탑재한 것이 확인되면서다. 인천에서 불이 났던 차량(EQE)에도 이 회사의 배터리가 탑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파라시스는 중국 내에서도 판매량 10위권에 머무는 기업이다. 게다가 기술력도 떨어진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해당 기업이 보유한 특허 수를 기술력을 입증하는 주요 지표로 여긴다.

파라시스가 미국에서 인정받은 특허 수는 약 20개 정도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약 3800개), 같은 중국 기업인 CATL(약 2600개)과 비교해도 훨씬 적다. 

또 파라시스는 중국에서도 화재 문제를 일으키며 이 회사의 제품을 탑재한 3만여 대의 전기차가 리콜된 전력이 있다.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마저 탑재를 꺼리는 배터리 제조사로 전해진다.

이번에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도 파라시스 배터리를 사용한 곳은 벤츠가 유일했다.

한 벤츠 전기차 오너는 “벤츠보다 훨씬 저렴한 현대차와 기아도 대부분의 모델에 한국산 배터리를 사용했다”며 “이보다 두 배 넘는 돈을 주고 비싼 벤츠 전기차를 샀는데 안에는 정작 싼 중국산 배터리가 들어갔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고 말했다.

일부 벤츠 전기차주들은 “애초부터 벤츠가 배터리 제조사를 알리지 않고 판매한 것은 소비자를 기망한 것”이라며 집단 소송까지 예고했다.

물론 중국산 배터리라고 해서 더 화재에 취약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배터리) 제조국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한국산 배터리가 화재에 더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SK온 배터리를 탑재한 기아 EV6 차량에서도 원인 모를 불이 나기도 했다.


내연기관차 판매도 악영향 전망

벤츠 코리아가 보여준 대처도 소비자들의 분노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수입차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중국산 배터리 논란을 가중시킨 것은 벤츠 코리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배경은 이렇다. 전기차 화재 사고가 연이어 나며 대중들이 불안감을 호소하자 정부는 완성차 업계들을 상대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전기차 화재 사고의 중심에 있던 벤츠 코리아 측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를 완강히 거부한 것이다. 

다른 업체들은 달랐다. 정부의 요청에 선뜻 홈페이지에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나섰다. 자연히 벤츠에 대한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떳떳하게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자 결국 벤츠도 뒤늦게 부랴부랴 배터리 제조사를 홈페이지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벤츠 전기차 대부분이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의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초에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꺼린 것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벤츠의 이미지와 신뢰가 크게 실추된 만큼 전기차뿐 아니라 내연기관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수입차 시장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하며 판매량이 급감했던 사례가 여럿 있었다. 아우디뿐만이 아니다.

2018년에는 BMW가 곤욕을 치렀다. 주력 모델인 5시리즈 디젤 차량에서 연이은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안전성 문제와 함께 당시 BMW가 결함을 은폐 및 축소하고 늑장 리콜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BMW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15%가량 떨어졌다.

이때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 벤츠다. 한동안 BMW 기피 현상이 벌어지며 수입차 시장에서 벤츠의 독주체제가 이어졌다.

2019년에는 ‘노재팬’의 영향으로 일본 차들의 판매가 급감했다. 수입자 시장을 주름잡았던 렉서스, 혼다 등의 차량이 외면받았다. 닛산은 차가 너무 안 팔려 2020년 아예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벤츠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벤츠가 무늬만 독일 기업일 뿐 사실상 중국 기업에 가깝다는 사실이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특히 한국 소비자들은 ‘중국산’에 대한 반감이 높은데 이번 화재로 벤츠는 중국산 차량이라는 이미지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됐다”며 “당분간 부진한 판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실제로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의 경우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이 지분 9.98%를, 중국 지리자동차가 지분 9.69%를 각각 보유한 최대주주다.

한편 벤츠는 올해 한국 시장에서의 1위 탈환을 목표로 세운 바 있다. 벤츠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판매량 1위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BMW에 왕좌를 내줬다.

올해 다양한 신차를 앞세워 1위를 재탈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현재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BMW의 2년 연속 1위 수성이 유력하다는 게 수입차 업계의 시각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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