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짜리 헬기도 부순다” 소리 없이 나온 하늘의 암살자 정체는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4. 8.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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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이래로 지상전에서 크게 활약해온 헬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전선 깊숙한 내륙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 적 기갑부대를 미사일과 로켓탄으로 타격해 전투의 판도를 뒤바꿨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드론에 폭발물을 장착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옛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위력을 떨쳤던 MI-24 하인드, 1차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격파했던 AH-64 아파치 공격헬기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서 공격헬기 도입이 잇따랐고, 수송헬기에 의한 공정작전 비중이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헬기의 위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강력한 지상 방공망에 의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엔 1인칭 시점(FVP) 드론의 공격으로 헬기가 격추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제력을 갖춘 일부 국가만이 갖고 있던 값비싼 첨단 기술이 약간의 창의성과 시간,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드론에 위협을 받는 모양새다. 발상의 전환에 따른 새로운 기술과 전술의 등장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드론으로 헬기를 요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탄만큼이나 흔하게 쓰이는 드론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보병이 사용하는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우크라이나군은 FPV 드론이 러시아군 Mi-28 공격헬기의 꼬리 회전날개를 성공적으로 타격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지난 1일에는 FPV 드론으로 러시아군 Mi-8 수송헬기를 격추한 것으로 알려졌다.

FPV 드론은 기체의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영상을 가상현실(VR) 고글로 보면서 사람이 직접 조종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FPV 드론을 자폭드론처럼 활용해 러시아군 진지와 전차, 장갑차 등을 공격해왔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FPV 드론을 개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러시아군 헬기도 FPV 드론의 표적이었다.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러시아 지상군을 전선으로 수송하고,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는 헬기는 우크라이나군에게 눈엣가시였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은 FPV 드론으로 러시아 헬기를 격추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KA-52 공격헬기나 MI-8 수송헬기 등에 FPV 드론이 매우 가까이 접근하는 사례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고속으로 비행하는 헬기에 FPV 드론을 근접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성비 측면에서 FPV 드론이 훨씬 우수하지만,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이 헬기 공격에 주로 쓰인 이유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에서 헬기는 예전부터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을 활용한 우크라이나의 지상 방공망은 러시아군 헬기부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실제로 전쟁 초기인 2022년 4월 러시아군 MI-28 1대가 우크라이나군이 쏜 영국산 스타스트릭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된 바 있다. 최근 FPV 드론에 격추됐다고 알려진 핼기와 같은 기종이다.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HUR)은 러시아군이 개전 이래 최대 326대의 헬기를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전장에서 헬기가 방공망 위협에 많이 직면했다는 의미다.

이같은 상황에서 FPV 드론이 헬기를 격추한 것은 또다른 변수를 만들어낸다.

FPV 드론은 지대공미사일보다 훨씬 저렴하며 신속하게 대량으로 전선에 배치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므로 헬기에 장착된 섬광탄이나 채프 등의 미사일방어장치도 회피할 수 있다.

러시아군 MI-8 수송헬기가 자동차를 운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러시아군 헬기가 이착륙을 할 때처럼 취약한 시점을 노려서 FPV 드론이 조종사가 위협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각지대에서 접근, 헬기 꼬리날개를 강타하면 헬기는 무력화된다.

러시아군으로선 헬기를 전장에 투입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위험요소가 늘어난 셈이다.

최근 FPV 드론에 피격된 MI-28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공격헬기다. 장갑이 튼튼하고 공격력도 강하면서 속도도 시속 377㎞에 달할 정도로 빠르다. 그런데도 FPV 드론의 공격을 피하지 못헀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대부분의 러시아 헬기가 위협에 노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KA-52 공격헬기는 MI-28보다 최대속도가 빠르지만, MI-24 공격헬기나 MI-8 수송헬기 등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고 크기도 크다. FPV 드론을 이용해 헬기를 공격하는 방법을 터득한 우크라이나군의 표적이 될 수 있다. 

FPV 드론의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는 것도 위협의 강도를 높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FPV 드론이 처음으로 쓰였을 때는 사거리가 3~5㎞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15~20㎞로 늘어났다. 휴대용 지대공미사일보다 공격 범위가 더 넓어진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FPV 드론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군의 헬기 사용은 한층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신속한 화력지원과 병력운용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향후 기술 발전의 속도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이 다수의 FPV 드론을 헬기 공격에 운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종의 군집 드론이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군이 올해 초부터 FPV 드론의 군집 운용을 진행하는 정황이 러시아군에 의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FPV 드론을 정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러시아군 헬기를 대상으로 군집 운용을 시도한다면, 헬기가 격추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이는 헬기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된다. 헬기가 지상 방공망에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FPV 드론이라는 새로운 위협의 출현은 헬기의 역할에 대한 재검토를 촉발할 수 있다.

병력을 수송하는 일반 헬기는 전장에서 계속 역할을 맡을 수 있겠지만, 공격헬기의 경우에는 무인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폭드론이나 공격드론 등이 대안으로 주목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새롭게 바뀌는 러시아 드론

FPV 드론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비행거리가 한층 늘어난 FPV 드론은 단점도 있다. 드론 조종사와 기체는 무선을 통해 연결된다. 조종사는 이를 통해 드론 조종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기체를 통제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은 이같은 부분을 파고들고 있다. 전자전을 통해 FPV 드론을 조종사가 통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자전 시도를 극복하지 못하면 FPV 드론의 위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드론을 무력화하는 전자전과 더불어 그 전자전을 저지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에선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FPV 드론이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트란스바이칼 지역의 한 기업에선 베터(VETER)라는 이름의 FPV 드론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 군인이 중국산 DJI 드론을 조종하면서 전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이는 베터 FPV 드론은 AI 기술을 활용, 운영자가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목표물을 탐색하고 공격할 수 있다. 드론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므로 전자전 상황에서도 운영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행거리는 배터리 용량과 탑재중량에 따라 달라지지만 10~20㎞ 정도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150㎞에 달한다. 중국 DJI FPV 드론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전자전 시도를 극복하려는 또다른 시도도 러시아에서 포착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을 진행중인 러시아 쿠르스크 일대에서 러시아군이 FPV 드론에 무선 대신 광섬유 케이블을 사용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10㎞ 길이의 광섬유 케이블을 장착한 것으로 ‘드론은 무선으로 통제한다’는 인식을 깨버린 셈이다.

무선으로 통제하는 드론은 전파방해 등의 전자전에 취약하다. 전파 대신 광섬유 케이블을 사용하면 모든 제어가 유선으로 이뤄지므로 전자전 시도를 무력화한다.

전자전 시도가 저지되면 운용자가 보는 영상의 품질도 크게 높아진다. 영상 품질 향상은 드론 운용의 효율성과 목표물을 타격할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FPV 드론들이 전장에 투입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드론이 작동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숨기는 것도 가능하다. 무선으로 드론을 통제하면 전자전 체계를 통해 드론의 움직임과 조종사 위치 등이 탐지될 위험이 있다.

단점도 있다. FPV 드론은 지면 가까이서 자유롭게 비행경로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광섬유 케이블을 사용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전에는 무시할 수 있었던 건물이나 송전탑 등이 비행 과정에서 장애물이 된다. 

이를 우회하려면 포물선을 그리면서 FPV 드론을 날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는 상대방에 포착될 위험을 높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드론을 운용하는 신기술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전개되는 소형 드론 기술의 혁신이 항공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기술과 사용법의 빠른 진화는 미래전에서 중대한 기술혁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이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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