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지구에게 준 것, 인간이 앗아간 것[책과 삶]

박송이 기자 2024. 8. 23. 0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로큰맥 마운틴’ 원작자 논픽션
탄소 가두고 뭇생명 키우는 습지
역사·환경·문화 전방위 넘나들며
파괴와 복원 현장감 있게 다뤄
“망친 자연 되돌리긴 엄청 어렵다”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떼가 먹이활동을 하기 위해 전남 순천시 순천만습지의 농경지로 내려앉고 있다. 강윤중 기자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문학수첩 |264쪽 |1만4000원

습지의 역사는 곧 습지 파괴의 역사였다. 세계 습지의 대부분은 마지막 빙하기 때 빙하가 녹아 콸콸 쏟아지면서 생겨났다. 펜((Fen·풀이 많고 수심이 깊은 지대), 보그(Bog·강우가 수원이 되고 수심이 얕은 지대) 스웜프(Swamp·수심이 많이 얕고 나무와 덤불이 무성한 지대), 바다 후미 등 습지는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고, 그 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생물을 먹여 살렸다. 그러나 인간의 수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은 습지를 쓸모없는 땅으로 간주하며 물을 빼내 농경지와 택지로 바꿨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습지는 본격적으로 벌목, 개척, 개간 등 개발의 대상이 됐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는 문명화를 내세워 명맥이 끊겨버린 습지의 역사, 습지의 생태학적 역할과 환경적 가치, 과거 예술작품에 담긴 습지의 문화사적 의미 등 역사·환경·문화·예술 등 온갖 분야에 걸쳐 습지에 대해 다룬 책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한국에서는 영화 <브로큰백 마운틴>의 원작자로 알려진 애니 프루가 쓴 두 번째 논픽션이다.

저자는 수백 년 전 쓰여진 습지와 관련한 자료, 문헌 등을 살피면서 과거 습지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됐었는지를 보여준다. 습지를 개발해 습지 주민들을 농촌 노동자로 만들려 했던 국가와 정부의 배수사업에 맞서 자신의 삶을 터전을 지키려고 했던 주민들의 충돌 등 사회학적 맥락도 다룬다. 또 <월든> <신곡> <라쇼몽> 등 세계적인 문학 작품들에서 습지가 어떻게 묘사돼 왔으며 인간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는지도 소개한다. 이같은 접근은 늘 무시받고 약탈대상이 되었던 습지가 실은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며,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곳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습지의 의미이다. 저자는 기후위기의 대표적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 문제에서 습지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열대 스웜프 숲은 지구 전역에서 지하에 묻혀있는 탄소 중 무려 1/3을 붙잡아 두고” 있으며 “툰드라 지역 특유의 팔사 보그는 식물들이 얼어붙은 영구동토층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천년 동안 탄소를 가둬두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또 맹그로브 스웜프는 “해수면 상승을 최전선에서 막아주는 중요한 방어막이자 열대림보다 다섯 배나 성능이 좋은 이산화탄소 흡수제”라고 전한다. 반면 배수사업 등으로 훼손된 습지에서는 붙잡아 두고 있던 메탄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쏟아져 나와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역변하기도 한다.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문학수첩 제공

습지는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파괴됐다. 저자는 영국을 예로 들며, 과거 습지의 한 형태인 펜의 총면적이 4만145제곱킬로미터(경기도의 약 3.9배)였으나 인클로저 운동, 가차 없는 배수사업, 산업화와 도시화로 남아 있는 펜은 원래 면적의 1%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쓸모없는 땅으로 간주되어 온 습지의 중요성이 주목받은 것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1971년 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람사르 협약’이 맺어지는 등 습지를 보존하는 움직임과 나아가 파괴된 습지를 복원하는 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지 파괴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습지에서 자라는 맹그로브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블루카본’의 중요한 일원이다. 그러나 맹그로브가 서식하는 맹그로브 스웜프는 여전히 개발의 대상이다. 2020년 멕시코에서는 대규모 정유공장을 지을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광대한 맹그로브 숲이 사라졌다. 동남아 등지에서는 산업형 새우 양식장 야자유 농장, 논 등으로 활용되기 위해 지금도 맹그로브 스웜프가 파괴되고 있다.

파괴는 쉽지만 복원은 어렵다. 이라크에서는 1991년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라크의 마사 아랍스 습지에서 배수사업을 실시했다. 2003년 다시 이 습지의 복원작업이 시작됐으나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2001년부터 영국 케임브리지셔에서는 5헥타르(축구장 6.7개 정도의 면적)의 작은 땅이지만 100년에 걸쳐 손상된 펜을 복원하려는 ‘그레이트 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저자는 “망가진 자연을 되돌리고 복원하는 일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가 점점 깨닫고 있다. 터주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말 어렵다”라며 “건축과 파괴에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인류가 자연계를 복원하는 일에는 불쌍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냥 우리 적성에 안 맞는 일이다”라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복원을 포기하지 않고 나선 이들의 이야기와 습지의 존재는 독자들로 하여금 조용한 희망을 걸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일러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