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동양 정치철학의 원류 書經…`민본·애민 사상`을 주창하다
- "백성의 뜻이 하늘의 뜻"…정치인은 우환의식 가져야
서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있다면 동양에는 '서경'(書經)이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각각 동양과 서양에서 최초로 정치학을 확립시킨 저서로 꼽힌다. 기원전 4세기경 쓰여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고대 그리스 정치 사상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158개에 달하는 도시국가들의 정치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와 정치체제의 본질을 탐구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민주정의 이상과 한계를 직접 목도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국가상과 바람직한 정치체제의 조건, 시민의 자격과 덕목,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과 해법 등을 치열하게 탐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사상은 그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립한 인간관과 윤리관에 기초한다. 국가를 개인의 행복 실현을 위한 "최고의 공동체"로 규정하고, 정의로운 시민들의 덕성 함양이야말로 정치의 궁극적 목표임을 역설한다. 교육, 입법, 국방, 경제 등 국가 운영의 제반 요소를 유기적으로 조망하며 심도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스승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말한 이상주의적 유토피아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되, 보다 현실적인 맥락에서 이상 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 등 다양한 정체를 면밀하게 파악한 뒤 이들 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혼합정이야말로 가장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국가 형태임을 강조했다. 급진적 혁명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정치를 이상으로 제시했다. 특히 개인이나 계층, 정파의 사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선을 지향하는 '공공성'에 기반한 정치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임을 역설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보다 훨씬 앞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경은 상서(尙書)라고도 불린다. 크게 우서(虞書)· 하서(夏書)· 상서(商書)· 주서(周書)의 4부로 나뉘는데 각각 요순시대 · 하나라 · 은나라(상나라) · 주나라와 관련된 기록들을 싣고 있다.
정치란 무엇일까?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대부 계강자가 정치의 요체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정자정야(政者 正也)라. 자솔이정(子帥以正)이면 숙감부정(孰敢不正)이리오" . "다스릴 정(政)은 바르게 할 정(正)이다. 그대가 솔선해 스스로를 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논어 '안연'편에 나온다. 공자에게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그 덕이 온 백성(국민)에 미쳐 천하가 바르게 되는 것이다.
정치철학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삶은 공동체나 국가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의 정치철학에선 군주(임금)가 하늘의 명령에 따라, 즉 하늘로부터 위임받아 백성들을 통치한다.
◇천인합일의 사상
서경(書經)은 시경(詩經), 역경(易經)과 함께 중국 유교의 3경(三經) 가운데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다. 황제-전욱-제곡-당요-우순 등으로 이어지는 중국 전설 시대 오제의 시기를 기록한 책으로, 고대 국가들의 정사(政事)에 관한 문서를 공자가 편찬했다고 한다. 전국시대에는 공문서라는 의미로 '서'(書)라고 했는데, 한나라때 숭상해야 할 고대의 기록이라는 뜻에서 '상서'(尙書)라고도 했다.
서경은 현대까지 동양의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치의 정당성과 정치의 최종 목표, 군주(정치인)가 가져야 할 덕성 등에 관한 사유의 원형이다. 서경에 따르면 정치(政治)란 정(政)의 도(道)와, 치(治)의 술(術)이다. 임금의 덕은 아름다운 정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아름다운 정치의 핵심은 백성을 잘 기르는데 있다. 덕을 바르게 하는 것(정덕·正德), 백성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 것(이용·利用),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후생·厚生) 등 '삼사'(三事)가 군주가 할 일이다.
서경은 도덕을 수양한 군주의 위엄과 교화가 마치 바람처럼 사방의 백성들에 두루 퍼져 천하 지배를 실현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여기서 '정치 공동체' '천하 정치'의 관념이 탄생하고, '천하'(天下)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화된다. 현대인들도 생활을 하면서 "하늘의 뜻"이라는 표현을 쓸 때가 적지 않은데 이런 관념이 시작된 게 바로 서경이다.
백성(국민)을 지배하는 군주는 어디서 그런 힘(정치적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인가. 서경은 '천'(天)이라고 말한다. '하늘'은 절대자다. 이런 절대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 군주(천자)다. 이같은 '하늘과 군주가 하나'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은 정치의 도가 자연의 도에 근원한다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사상으로 발전한다. 인간 생활의 사회적 규범을 자연법칙에 의거하는 동양적 사유가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정치의 최종 목표는 안민(安民)
정치의 목적은 인애(仁愛)와 정의(正義)다. 서경이 그리는 정치의 최종 목표는 백성의 생활과 삶을 윤택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안민·安民)이다. 명덕신벌(明德愼罰, 덕을 밝히고 벌을 신중히 하며)과 애민·중민(愛民·重民, 백성을 아끼고 중요하게 생각함)의 정치 사상이 녹아있다. 서경에는 "오직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공고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민유방본 본고방녕·民惟邦本 本固邦寧)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요즘의 민본 사상과 상통한다. 또 "(군주는) 백성을 돌보는 것을 어린아이 돌보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군주는 덕을 갖춰야 하며, 인재를 알아보는(知人)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강태공과 함께 주나라를 세운 공신인 주공은 주 성왕(무왕의 아들)에게 "임금의 자격은 사람을 등용하는 도(용인지도·用人之道)가 핵심"이라며 오직 어진 이를 등용할 것을 권한다. 서경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통해 군주가 따라야 할 9가지 큰 법을 제시한다. 홍범구주는 주 무왕이 은나라를 정복한 뒤 은나라 현자인 기자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묻자 기자가 답변한 것을 적은 글로, 유가 정치사상의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군주는 편벽되거나 기울어져선 안되고, 좋아아거나 미워해서도 안되며, 특정 당에 치우치는(편당) 것도 불가하고, 상도(常道)에 위배되거나 부정해서도 안된다.
군주는 이와 함께 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우환(憂患)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우왕의 손자들이 태평성대를 바라고 부른 비가(悲歌) '오자지가'(五子之歌)에서 동양 정치사상의 중요 요소인 우환의식, 경계의식, 위기의식이 드러난다. 정치인은 늘 우환의식을 갖고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라의 위태로움은 (군주) 한 사람 때문이며, 나라가 영화롭고 편안함 또한 한 사람 때문이다"고 군주를 경계한다. 서경이 말하는 망국의 제1 징조는 '군주가 덕을 잃는 것'(실덕·失德)이다. 향락을 일삼지 말고 직분을 다하는 군주가 되라고 충고한다.
◇군주와 백성의 관계
절대자인 하늘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하늘은 그 명(命)이 일정하지 않다. 천명(天命)이라는 것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며, 주관적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천명이 머물고 떠남은 오직 군주 자신의 덕행에 의해 결정된다. 은나라 폭군 주왕과 하나라 폭군 걸왕은 덕을 공경하지 못해 천명을 잃었다.
군주에 대한 하늘의 평가는 군주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상천(上天)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것으로부터 보고, 우리 백성들이 듣는 것으로부터 듣는다." 이는 백성이 정치적 정당성을 근원임을 표현한 것이다.
군주와 백성 간의 관계는 바람과 풀, 배와 물로 비유된다. 군주는 바람(풍·風)이고 백성은 풀(초·草)이다. 바람은 군주의 덕을 의미한다. 바람이 불어 풀을 움직이듯, 군주가 덕의 가르침으로 백성들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반면 물(백성)이 배(군주)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는 것처럼 백성들은 군주가 잘못할 경우 갈아치울 수도 있다.(재주복주론·載舟覆舟論)
그래서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인심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미약하니, 한마음 한뜻으로 중도를 견지해야 한다"(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고 말한다. '16자 심전'(16字 心傳)이라고도 불리는 서경 대우모(大禹謨) 편의 이 구절을 주자는 요·순·우 임금이 서로 전한 밀지(은밀한 가르침)로, 최고의 도(道)로 평가했다.
서경은 신분적 질서를 유지하는 사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 수천년전에 민본사상을 피력하고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며 백성을 정치의 원동력으로 내세운 점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또 정치란 일종의 '문화'로, 무력이나 야만, 형식 등 '기술화'의 수단과 방식으로만 국한해선 높은 정치적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지금도 되새겨볼 만 하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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