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집값안정과 가계부채
코디네이션게임(coordination game)이라는 경제이론이 있다. 경제이론은 주위에서 쉽게 목격되는 현상을 축약해서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서로 조정 내지 협조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차선내지는 최악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코디네이션게임의 예중 하나로 야구경기 관람을 생각해보자. 다들 관중석에 앉아서 야구 경기를 보면 편할텐데 경기가 흥미진진해지면 하나둘씩 일어나게 된다. 앞사람이 일어선다면? 앉아서 보고 싶더라도 뒷사람은 일어나야 한다. 9회말 투아웃 만루상황도 아니고 초반이라면 앉아서 보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런데 앞줄 열혈 관람객이 일어나면 뒷줄 관람객은 뭐라하기 힘드니 함께 설 수밖에.
평소 생각지 못했던 코디네이션게임을 떠올린 것은 최근 들어 심상치 않아 보이는 가계부채와 주택가격 때문이다. 주택매입자들이 서로서로 집값 동향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과도한 대출도 받지 않는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정규모의 대출을 받아 적절한 가격의 집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출한도가 줄어들지 모르고 집값 상승도 빠르다는 불안이 퍼지게 되면 집값동향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집을 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서로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집값동향에 불안을 느끼다 보니 소득대비 집값이 너무 높다는 우려는 들리지 않는다. 내 집이 아니라 은행의 집이 되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똘똘한 한 채 투자수요까지 가세한다는 소식도 들리니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어려워지기 전에 일단 대출을 받아야 한다. 집값 상승이 나로 인해 가팔라 질 수 있지만 일단 나부터 일어설 수밖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살펴보더라도 일어나서 관람하는 가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전국 주택가격전망CSI의 경우 지난 2월 92에서 8월 118로 26 포인트가 상승했다. 대전 및 충남 지역도 같은 기간중 각각 95에서 117로 22 포인트, 90에서 115로 25포인트 상승했다. 코디네이션게임이론에 따르면 차선 또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조정자가 조정 내지 협조의 룰을 정하고 이를 잘 지키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가계대출관리 등 거시건전성정책이나 은행권의 대출억제 노력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 않자 아직 초반이지만 일어나서 경기를 보는 가계가 늘어나고 있다. 영끌을 하고 후회하더라도 집값 상승 후 벼락거지의 박탈감은 느끼지 않겠다는 심리도 일조하는 듯하다.
과거 주택가격을 보면 서울과 수도권이 상승흐름을 주도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지역으로 번져가는 모습이 관찰됐다. 최근 주택가격을 보면 서울의 주요지역 주택가격이 전고점을 넘어섰을 뿐 아니라 가격 상승 흐름이 서울 주변 지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비록 수도권과 여타지역의 주택가격이 차별화되고 있다지만, 대전세종충남지역의 주택가격전망CSI 움직임을 고려할 때 과거 패턴이 반복된다면 대전과 충남지역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주택가격이 뜀박질하고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3년 만기 국채금리 등 주요 시장금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선반영하고 주요국의 장기금리 하락에 영향받으면서 이미 기준금리 3.5%를 상당폭 하회하고 있다. 아마도 낮아진 시장금리는 다음 달부터 대출금리에 반영되면서 가계대출 수요를 한층 더 증대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금리정책의 기업투자 제고 효과를 위해서는 가계대출관리 등 거시건전성정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주택가격의 추세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청년층뿐 아니라 중장년층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정책당국은 실수요자들이 차분하게 앉아서 집값동향을 살핀 후 과도하게 대출받지 않고 적절한 가격의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조정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에 발표된 주택공급 확대 방안도 조정역할 제고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택 실수요자들도 어쩌면 평생 힘들게 갚아야 할지 모르는 대출을 받고 주택을 구입하기에 앞서 비용과 편익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 김인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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