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밥을 굶었어요.

2024. 8.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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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뒷골목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저기요!" 하는 소리와 동시에 체격이 좋은 청년 한 명이 앞을 가로 막는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밥을 굶었다며 밥값을 꿔달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하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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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동화작가.

성당 뒷골목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인근 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는 중이다. 가로등도 희미한 골목은 적막하다. 서너 잔 마신 소맥이 얼큰하게 올라온다. 입에 붙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정감어린 골목 상점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가장 밝은 빛을 내던 슈퍼마켓의 불빛이 사라진다.

그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저기요!" 하는 소리와 동시에 체격이 좋은 청년 한 명이 앞을 가로 막는다. 머리가 쭈뼛해지고 술이 확 깬다. 그는 경계하며 쳐다보는 나를 향해 불쑥 손을 내민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밥을 굶었다며 밥값을 꿔달라고 했다. 인적이 없는 어두운 뒷골목, 주저할 상황이 아니다. 호기 있게 소리쳤다. "야,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 밥은 먹고 다녀야지" 하며 밥값을 내줬다.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하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며칠 전에 본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청년 인구가 44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이유는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에 맞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문 한 쪽에는 외국인 근로자 수가 100만 명 시대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인이 떠난 일자리를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조선업의 용접이나 도장은 물론이고 제조업과 건설과 농업도 외국인 근로자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 소장이나 팀장까지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누가 요즘 젊은이들을 나약하다고 했는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세대들이다. 그들이 수없이 흘린 땀의 대가다. 구직조차 포기한 젊은이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땀 흘려 일하고 그 대가로 받는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정립이 어려서부터 필요하다. 박진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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