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경계인이 될 수 있으니까 [사람IN]

김영화 기자 2024. 8. 23.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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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다.

시와 수필로 수상한 이력도 있다.

시인을 꿈꾸며 한국에 온 그는 '이주'라는 뜨거운 현안을 만나면서 활동가가 되었다.

"이주민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싶어요. 누구나 경계인이 될 수 있거든요. 이주의 시대는 흑백논리와 양자택일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를 계속 바꿔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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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박동찬씨.ⓒ시사IN 조남진

어려서부터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다. 시와 수필로 수상한 이력도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다니고 일본으로 유학했던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었다. “동아시아를 경계 없이 유영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그래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한국으로.” 중국 동포 5세인 박동찬씨(28)는 2015년 집을 떠났다. 바라던 대로 연세대 국문학과에 합격하면서다.

고국에서의 삶은 기대와 달랐다. 중국 동포임을 말할 때마다 난처한 질문들이 그를 향했다. ‘중국과 한국이 축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할 거야?’ 같은. “한 사람의 정체성은 출신국에도 남아 있고 도착국에도 남아 있어요. 한국에선 국적이 곧 민족이잖아요. 그 두 개가 불일치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낯설어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박동찬씨는 ‘모국어는 중국어이고 모어는 한국어’라고 설명하곤 한다.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게 디아스포라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한·중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반중 정서와 혐오가 모습을 점차 드러냈다. 사드 배치 논란, 중국 동포를 범죄자로 그린 영화 〈청년경찰〉 개봉, ‘우한발’로 불리던 코로나19 유행까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박씨는 시 쓰기가 어려워졌다. 대신 현장에 나갔다. 서울 대림동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이주민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과 이슈가 있을 때마다 대림동에 와서 사진을 막 찍어대는 거예요. 얼마나 억울해요. 10년 넘게 중국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인데요.” 대림동을 자신의 ‘나와바리’라고 소개하는 박동찬씨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대림동이 한국의 ‘외딴 섬’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시인을 꿈꾸며 한국에 온 그는 ‘이주’라는 뜨거운 현안을 만나면서 활동가가 되었다. 화성 아리셀 참사는 그동안 가졌던 의심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참사 당일 중국 동포들의 유가족을 찾아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건너건너 왔다. “누가 여기 와서 일했는지 회사 측에 명단이 없으니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박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가족의 사연을 듣고 통역하는 내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온도차’가 분명히 있음을 느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내국인 노동자보다 3배 높다고 해요. 재난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게 아니라는 거죠. 위험이 말 그대로 이주화되고 있어요. 만약 내국인 노동자가 23명 사망했다면 한국은 발칵 뒤집어지지 않았을까요?”

지난 7월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가 3년 만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국인은 줄었지만 외국인이 늘어난 결과다. 박동찬씨의 목소리가 필요한 현장도 많아질 예정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못 받았을 때 제가 했던 얘기가 ‘우리도 세금 납부해요’였는데, 언어가 빈곤하다고 생각했어요. 꼭 쓸모를 어필해야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나요?” 딱 1년 전, 서울 신대방역 인근에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를 만든 이유다. 재외동포 당사자부터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등 7명이 모였다. 역점 사업 중 하나는 대림동 걷기 프로그램으로, 벌써 30여 차례 이어졌다. “이주민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싶어요. 누구나 경계인이 될 수 있거든요. 이주의 시대는 흑백논리와 양자택일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를 계속 바꿔나갈 겁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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