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작도 안 해…한반도 폭염·폭우 일상화된다"

권다희 기자 2024. 8. 2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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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기후리포트: 날씨의 습격-기후과학자에게 묻다]
①허창회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석좌교수
[편집자주] 사상 최장 열대야, 시간당 100㎜의 폭우 등 올해 여름을 포함해 최근 몇년간 기록적 폭염과 폭우가 한반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이전과 다른' 날씨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를 '한반도 기후리포트'를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짚어 본다. 그 첫 순서로 지금 겪고 있는 이상기후가 지구온난화와 어떤 관계인지, 한반도에서 특히 주목되는 이상기후는 어떤 것인 지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 본다.

허창회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3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기후변화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앞으로 20~30년 후부터는 이상기후가 일상화될 겁니다. 그때는 지금을 돌아보며 '참 살기 좋았다' 할 수도 있어요."

한국 최고의 기후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허창회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석좌교수는 지난 13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지구온난화가 한반도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은 이전에도 있던 이상기후가 좀 더 자주 나타나는 정도"라며 "길게 잡아도 2040년 혹은 2050년 이후부터는 이상기후가 일상화될 것"이라 했다.

2022년 8월 서울 남부 폭우로 미시적 주제 관심…한반도 강수 "구조적 변화"
특히 그가 주목하는 변화는 한반도의 강수 패턴이다. 최근 몇 년간 내린 비를 설명하며 "구조적으로 바뀌었다"는 표현을 거듭 썼다. 번개를 동반한 강수,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많은 비 등 이전엔 드물던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게 대표적 변화다.

주로 거시적인 주제를 연구하던 그가 미시적 사건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도 2022년 8월 강남 일대에 침수 피해를 불러 온 극한호우다. 그 달 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500㎜에 이르는 비가 내렸다. 특히, 동작구에 기상관측 후 최대인 시간당 141㎜의 폭우가 쏟아진 기록 역시 그날 발생했다. 운전이 어려워지는 비의 양이 시간당 30㎜ 정도인 걸 고려하면 시간당 100㎜대의 비는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비다.

허 교수팀에 따르면 8일 저녁 강수는 인천 앞바다에서 만들어진 3개의 비구름(대류셀)이 합쳐져 서울에서 비를 뿌린 경우다. 육지와 해안간 마찰이 대류셀 3개가 합쳐진 강한 비구름을 높이 올리면서 좁은 지역에 집중적인 비가 내렸다. 수도권에서 잘 발생하지 않는 번개가 친 것도 비구름이 높은 곳까지 끌어 올려진 결과다. 2022년 8월의 사례를 시작으로 허 교수는 한반도의 강수 패턴이 어떻게, 왜 변화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남반구 중위도 지역인 브라질 지역에 대한 연구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30년간 서울 지역 7월 기온/그래픽=윤선정

온난화→대기 중 수증기 증가 한반도 기후 바꿔…여름 갈수록 더 더워져
이런 폭우 등의 이상기후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묻자 허 교수는 사후분석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가장 큰 원인은 대기 중 수증기가 늘어났다는 점"이라 했다. 수증기 증가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기 때문에 온난화가 바뀐 강수패턴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해 지표면이 가열되고 대기의 온도가 높아지면 대기에서 단위 부피당 저장할 수 있는 수증기가 늘어난다. 수증기는 이산화탄소의 7~8배에 상응하는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품게 되면서 더 더워지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이전엔 수년에 한번쯤 발생했던 수준의 폭우가 일년에 여러번 국지적으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에 대기 중 수증기 증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허 교수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과거에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빈번해지고 있다는 게 걱정된다"고 했다.

폭염 역시 일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허 교수에 따르면 과거 80여 년간 한반도 평균기온에 변화가 없었으나, 1990년 즈음에 갑자기 온도 상승이 나타났고, 이후 여름철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자료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으로 기억되는 1994년 여름(6~8월) 서울의 평균기온이 27.6℃였는데, 2010년대 이후에는 평균기온이 27℃가 넘는 여름이 2012년, 2013년, 2016년, 2018년, 2019년, 2023년 찾아 왔다. 약 30년 전 이례적이었던 더위가 최근 10여년새에 빈번해진 것.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말복을 하루 앞두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횡단보도에서 한 여성이 겉옷으로 얼굴을 감싼 채 걷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이날 발표한 '폭염 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주요 25개 지역에서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오른 일수를 분석한 결과 강도 높은 폭염이 최근 10년간(2014~2023) 연평균 5.11일 발생해 앞선 10년간(2004~2013, 2.10일)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는 "폭염의 빈도·지속도·강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최근 가장 더운 여름, 30년 후 가장 '덜 더운' 여름 될 것"

허 교수는 한반도 여름 평균기온이 2040년대 정도의 가까운 미래에는 현재보다 0.9℃가량, 2070년대의 먼 미래는 2.5℃ 더 상승할 거라 예측한다. 최근 몇년간 여름 평균기온의 가장 높은 값이 약 30년 후에는 가장 낮은 평균값이 될 거란 관측이다. 가까운 미래의 폭염 피해 사망률은 현재보다 약 2배, 먼 미래의 사망률은 현재보다 5~7배 더 높아질 거란 예측도 동반됐다.

허 교수는 "온난화가 앞으로 수십년간 끼칠 영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구의 이산화탄소는 산업혁명 이후 현재 이전 수준의 1.5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산업혁명 전 280ppmv(부피기준 해당 기체가 공기의 100만분 중 차지하는 비중)로 유지되던 이산화탄소양이 지난해 4월 기준 424ppmv를 기록했다. 매해 1%씩 늘어난 셈이다. 이산화탄소가 이미 늘어난 데 따른 여파로서의 기후변화는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허 교수는 "이제 재난에 대비하고 바뀐 기후시스템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며 "다만 지금 최선의 노력을 하면 두 세대 이후에는 더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라 했다.

※허창회 교수는
△2024~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석좌교수 △2022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1998~2023년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1994~1997년 미국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연구원 △1986~1994년 서울대학교 대기과학과 학사·석사·박사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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