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회 이사장 “한시적 의료소송 면제 필요… 그래야 응급실 떠난 의사 돌아와”
김인병 응급의학회 이사장 ‘응급실 파행’의 4가지 해법
“한시적 의료 소송 면제 같은 특단의 대책이 당장 나와야 한다.”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명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응급실 문제의 핵심은 전공의 집단 사직 후 근무할 의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사직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중환자가 많은 대형 병원 응급실에 일반의로도 들어오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민형사 소송 부담”이라고 했다.
그는 “전공의 이탈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면서 응급실 전문의들은 번아웃(극도의 피로) 상태”라며 “이미 대부분 응급실이 해당 병원에서 수술을 한 기존 환자 위주로 받고 있고, 신규 환자나 전원(병원을 옮기는) 환자는 못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9월이 되면 코로나가 정점을 찍어 환자들이 더 몰릴 것이고, 필수 진료과 의사들이 대거 쉬는 추석 연휴도 있다”며 “지금 상태로는 응급실 연쇄 셧다운(운영 중단)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당장 무얼 해야 하나.
“9월이 오기 전에 한시적으로라도 민형사 소송 면제 같은 파격적 대책이 필요하다.”
-사고 빈발 우려가 클 텐데.
“일부러 환자를 위태롭게 할 의사는 없다. 의사가 없어 응급 환자가 제때 치료를 못 받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효과가 있을까.
“지금 사직 전공의들은 요양원이나 건강검진센터, 지방의료원 등에 일반의로 취업하고 있다. 중환자가 거의 없어 소송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담을 낮춰야 한다.”
-법 개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당장 할 수 있나.
“정부가 어떻게든 야당의 협조를 얻어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절박하다. 어렵다면 모든 가용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현재 비대면 진료도 법적 근거가 없다. 정부가 시범 사업 형태로 하고 있지 않은가.”
-경증 환자 쏠림 문제는.
“‘경증 환자 관리료’를 시급히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응급실에 온 환자가 경증 환자로 판명이 나면, 본인이 100% 관리료를 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의료 보험이나 실손 보험도 적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 20만원 안팎으로 해서, 지금의 5만~6만원인 응급 의료 관리료의 4~5배가 되게 하면 감기·두드러기 등 경증 환자들이 줄어들 것이다.”
-다른 긴급 방안은.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를 중소형 병원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 지침에 어느 정도의 경증 환자를 돌려보낼 수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오래전부터 정부에 요청했는데 아직 그대로다. 이러니 중환자를 위해 경증 환자는 회송하려 해도 환자와 가족이 크게 반발한다. 이 모든 걸 응급실 의사가 감당하고 있다.”
-응급실 진료 거부도 필요한가.
“응급실 의료진에 대해 물리적 힘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앞세워 폭언, 폭행, 협박을 한 환자는 진료 거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 발표대로 지금은 ‘심각한 의료 재난 상황’이다. 응급의료법은 응급실 의료진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거부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 명시되지 않아, 응급실 의사는 폭행을 당해도 그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요즘엔 난동 환자가 1명만 들어와도 응급실 전체가 마비된다.”
-정부는 이미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는데.
“응급실에서 폭언·폭행 환자는 진료 거부할 수 있다는 2020년 유권 해석을 대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난동 부린 환자가 ‘진료 거부 당했다’고 민원 제기하면 2~3일 뒤 관할 보건소에서 나와서 의사 면담 조사 등을 한다. 면담 조사 시간만큼 응급실은 셧다운 된다. 정부가 법령에 구체적 진료 거부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지자체 역할도 필요하지 않나.
“정말 중요하다. 응급·중증 환자는 시간이 생명이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지자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관련법에도 각 시도가 응급의료지원단을 구성해 응급 환자 수송 체계를 짜게 돼 있다. 국가 예산도 배정됐다. 하지만 거의 돌아가지 않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이제 지자체도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
-정부가 응급실 진찰료 추가 인상을 발표했다.
“남아 있는 의사들에게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어서 긍정적이다. 이미 올 2월부터 진찰료가 100% 인상됐다. 그런데 이 돈이 한 달에 세후 100만원 정도다. 돈보다 ‘정부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상황이 나아지겠구나’ 하는 희망을 주는 면이 더 크다. 지금 응급실 의사들 기운을 더 빼는 건 이런 절망적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수가 인상 필요성은.
“이건 응급의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 진료과 전체의 문제다. 응급실의 경우 중환자에게 의료진 4~5명이 붙어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해도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는 10만원이다. 정부는 필수 의료에 10조원을 투입할 것이고, 올해만 1조원 넘게 썼다고 하는데 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
-제때 치료 못 받은 환자가 늘고 있나.
“최근에 경상도 지역에서 교통사고 환자가 있었다. 눈을 크게 다쳐 안과 응급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받아주겠다는 응급실이 없어 충청도를 거쳐 수도권까지 왔다. 그랬는데도 안과 응급 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다음 날 낮에 외래로 안과 진료를 받았다.”
-정부는 진료 차질이 있는 응급실이 1.2%라는데.
“현실을 안 보고 모니터 속 통계만 봐서 그렇다. 지금 응급실 상황은 붕괴 직전이다. 모든 응급실엔 근무 시간대별로 전문의 1명만 근무한다. 전공의가 있을 땐 전문의와 전공의 합쳐 4명 정도가 근무했다. 중환자 한 명 들어오면 다른 중환자 진료는 줄줄이 밀리는 지경이다.”
-언제까지 응급실 유지가 가능할까.
“앞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정부는 병원에 지원해줄 응급의학과 전문의 군의관도 없다. 응급실 의사 1명이 빠지면 그 응급실은 물론 다른 병원까지 줄줄이 셧다운 될 상황이다. 1명이 사직하면 동료 의사들은 공백을 메울 엄두가 안 나 따라서 우르르 나가고 있다. 아주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도 다 그런 상황이다.”
-수술 등 최종 치료는 배후 진료과에서 하지 않나.
“그렇다. 다만 응급실은 중환자가 예약 없이 바로 수술·입원 할 수 있는 24시간 통로다. 통로의 앞(응급실)이 막히면 전체가 막히지 않나.”
김 이사장은 “더는 ‘검토하겠다’ ‘논의하겠다’는 모호한 발표 말고 ‘오늘부터 시행한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김인병은
명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권역응급센터장으로 현장 근무하면서 의무부원장도 맡고 있다. 올 1월 2년 임기의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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