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회 이사장 “한시적 의료소송 면제 필요… 그래야 응급실 떠난 의사 돌아와”

조백건 기자 2024. 8. 2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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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응급실]
김인병 응급의학회 이사장 ‘응급실 파행’의 4가지 해법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9월이 오기 전에 파격적 응급 의료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오늘부터 시행한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한시적 의료 소송 면제 같은 특단의 대책이 당장 나와야 한다.”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명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응급실 문제의 핵심은 전공의 집단 사직 후 근무할 의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사직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중환자가 많은 대형 병원 응급실에 일반의로도 들어오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민형사 소송 부담”이라고 했다.

그는 “전공의 이탈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면서 응급실 전문의들은 번아웃(극도의 피로) 상태”라며 “이미 대부분 응급실이 해당 병원에서 수술을 한 기존 환자 위주로 받고 있고, 신규 환자나 전원(병원을 옮기는) 환자는 못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9월이 되면 코로나가 정점을 찍어 환자들이 더 몰릴 것이고, 필수 진료과 의사들이 대거 쉬는 추석 연휴도 있다”며 “지금 상태로는 응급실 연쇄 셧다운(운영 중단)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당장 무얼 해야 하나.

“9월이 오기 전에 한시적으로라도 민형사 소송 면제 같은 파격적 대책이 필요하다.”

-사고 빈발 우려가 클 텐데.

“일부러 환자를 위태롭게 할 의사는 없다. 의사가 없어 응급 환자가 제때 치료를 못 받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효과가 있을까.

“지금 사직 전공의들은 요양원이나 건강검진센터, 지방의료원 등에 일반의로 취업하고 있다. 중환자가 거의 없어 소송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담을 낮춰야 한다.”

-법 개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당장 할 수 있나.

“정부가 어떻게든 야당의 협조를 얻어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절박하다. 어렵다면 모든 가용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현재 비대면 진료도 법적 근거가 없다. 정부가 시범 사업 형태로 하고 있지 않은가.”

-경증 환자 쏠림 문제는.

“‘경증 환자 관리료’를 시급히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응급실에 온 환자가 경증 환자로 판명이 나면, 본인이 100% 관리료를 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의료 보험이나 실손 보험도 적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 20만원 안팎으로 해서, 지금의 5만~6만원인 응급 의료 관리료의 4~5배가 되게 하면 감기·두드러기 등 경증 환자들이 줄어들 것이다.”

-다른 긴급 방안은.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를 중소형 병원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 지침에 어느 정도의 경증 환자를 돌려보낼 수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오래전부터 정부에 요청했는데 아직 그대로다. 이러니 중환자를 위해 경증 환자는 회송하려 해도 환자와 가족이 크게 반발한다. 이 모든 걸 응급실 의사가 감당하고 있다.”

-응급실 진료 거부도 필요한가.

“응급실 의료진에 대해 물리적 힘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앞세워 폭언, 폭행, 협박을 한 환자는 진료 거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 발표대로 지금은 ‘심각한 의료 재난 상황’이다. 응급의료법은 응급실 의료진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거부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 명시되지 않아, 응급실 의사는 폭행을 당해도 그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요즘엔 난동 환자가 1명만 들어와도 응급실 전체가 마비된다.”

-정부는 이미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는데.

“응급실에서 폭언·폭행 환자는 진료 거부할 수 있다는 2020년 유권 해석을 대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난동 부린 환자가 ‘진료 거부 당했다’고 민원 제기하면 2~3일 뒤 관할 보건소에서 나와서 의사 면담 조사 등을 한다. 면담 조사 시간만큼 응급실은 셧다운 된다. 정부가 법령에 구체적 진료 거부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지자체 역할도 필요하지 않나.

“정말 중요하다. 응급·중증 환자는 시간이 생명이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지자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관련법에도 각 시도가 응급의료지원단을 구성해 응급 환자 수송 체계를 짜게 돼 있다. 국가 예산도 배정됐다. 하지만 거의 돌아가지 않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이제 지자체도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인병 이사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정부가 응급실 진찰료 추가 인상을 발표했다.

“남아 있는 의사들에게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어서 긍정적이다. 이미 올 2월부터 진찰료가 100% 인상됐다. 그런데 이 돈이 한 달에 세후 100만원 정도다. 돈보다 ‘정부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상황이 나아지겠구나’ 하는 희망을 주는 면이 더 크다. 지금 응급실 의사들 기운을 더 빼는 건 이런 절망적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수가 인상 필요성은.

“이건 응급의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 진료과 전체의 문제다. 응급실의 경우 중환자에게 의료진 4~5명이 붙어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해도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는 10만원이다. 정부는 필수 의료에 10조원을 투입할 것이고, 올해만 1조원 넘게 썼다고 하는데 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

-제때 치료 못 받은 환자가 늘고 있나.

“최근에 경상도 지역에서 교통사고 환자가 있었다. 눈을 크게 다쳐 안과 응급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받아주겠다는 응급실이 없어 충청도를 거쳐 수도권까지 왔다. 그랬는데도 안과 응급 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다음 날 낮에 외래로 안과 진료를 받았다.”

-정부는 진료 차질이 있는 응급실이 1.2%라는데.

“현실을 안 보고 모니터 속 통계만 봐서 그렇다. 지금 응급실 상황은 붕괴 직전이다. 모든 응급실엔 근무 시간대별로 전문의 1명만 근무한다. 전공의가 있을 땐 전문의와 전공의 합쳐 4명 정도가 근무했다. 중환자 한 명 들어오면 다른 중환자 진료는 줄줄이 밀리는 지경이다.”

-언제까지 응급실 유지가 가능할까.

“앞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정부는 병원에 지원해줄 응급의학과 전문의 군의관도 없다. 응급실 의사 1명이 빠지면 그 응급실은 물론 다른 병원까지 줄줄이 셧다운 될 상황이다. 1명이 사직하면 동료 의사들은 공백을 메울 엄두가 안 나 따라서 우르르 나가고 있다. 아주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도 다 그런 상황이다.”

-수술 등 최종 치료는 배후 진료과에서 하지 않나.

“그렇다. 다만 응급실은 중환자가 예약 없이 바로 수술·입원 할 수 있는 24시간 통로다. 통로의 앞(응급실)이 막히면 전체가 막히지 않나.”

김 이사장은 “더는 ‘검토하겠다’ ‘논의하겠다’는 모호한 발표 말고 ‘오늘부터 시행한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김인병은

명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권역응급센터장으로 현장 근무하면서 의무부원장도 맡고 있다. 올 1월 2년 임기의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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