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마’를 넘어 진정한 독립까지, 갈 길 멀다 [책&생각]
현충원 묘역 친일파들, 독립운동가들 내려보고
조선총독부 암약하는 듯 어처구니없는 세태
한국독립운동,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완의 독립: 기억과 청산의 기록
이계형 지음 l 청아출판사 l 2만8000원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제국의 불행한 패전이 있은 지 이십유여 년. (…)”
이 불길한 목소리는 작고한 작가 최인훈의 연작 단편 ‘총독의 소리’(1968) 도입부에서 음울하게 울려 퍼진다. 전쟁에 패해 한반도에서 물러난 일제가 비밀리에 총독부의 지하 방송을 수십 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설정이 더는 엉뚱하거나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 이즈음이다. 기관의 성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인물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거기에다가 ‘중일마’니 ‘사과의 피로감’이니 하는 괴이쩍은 언설들은 작가의 상상이 터무니없지 않음을 알려준다. 신민과 밀정과 낭인의 존재를 일찌감치 직시한 작가의 예지가 놀랍기만 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철거되었지만 ‘총독부’는 엄연히 지하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더는 암약이 아니라 권력을 등에 업고 대놓고 떳떳이 활동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학자 이계형 국민대 교수가 ‘한국독립운동,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쓴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45년 해방으로 독립운동이 끝난 것이 아니며, 진정한 독립을 위해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가시지 않은 일제 잔재, 갈수록 노골화하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퇴행적인 권력의 역사 왜곡 등 김구와 안중근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통탄할 만한 사태들이 열거된다.
이 모든 일그러진 사태의 뿌리는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26일 독립운동가 김구가 안두희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보다 20일 전에는 제헌국회가 제정한 특별법에 따라 활동하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 경찰에 의해 습격당했다. 김구는 반민특위 활동을 적극 지지하며 친일 단죄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터였다. “두 사건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지은이는 쓴다. “민족 양심과 사회정의, 나아가서는 민족정기의 패배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반민특위 습격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일제강점기 국외로 강제동원된 한인은 모두 125만여 명이었다. 패전 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된 한인들의 귀환을 마무리하였지만,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동원을 맡았던 기업에 떠넘겼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징용 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일본에서 잇따라 기각되자 피해자들은 한국 법원에 같은 소송을 제기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8년 “원고들에게 각 위자료 1억 원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2021년 6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없다”며 앞선 대법원 결정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다.
2015년 7월 일본 내 ‘근대산업시설’과 ‘메이지 산업혁명: 철강·조선·석탄 산업’ 관련 23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런데 이 23곳에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던 사업장이 포함돼 있었다. 그 가운데 한 곳인 하시마 탄광, 일명 군함도에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징용되었고 그 가운데 무려 120여 명이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등재 결정문에 반영하기를 거부했고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강제징용’ 내용을 빼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후에 일본 산업을 지원한 한국인이 많았다”라는 왜곡된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난 7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에도 최소 1141명의 한국인이 강제징용돼 노역했음에도 관련 전시물에 ‘강제징용’ 내용이 빠졌지만 한국 정부는 큰 이의 제기 없이 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했다.
일제는 1943년 봄부터 패망 직전까지 한인 2천여 명을 중국 남단 섬 하이난으로 끌고 갔다.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감옥 수형자들까지 감형과 월급을 미끼로 동원했다. 그렇게 동원된 이들은 발목에 족쇄를 찬 채 일본군의 총칼 아래 감시를 받으며 노역에 시달렸는데, 패망 직후 일본군은 이들을 산기슭으로 끌고 가 총알을 아낀다며 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집단 매장했다. 지금 현지에는 ‘조선인 천인갱’(조선인 천 명이 묻힌 곳)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집단 매장지로는 유일한 유적인 그곳을 한국 정부가 나서서 보존하고 피해자 유해 발굴과 봉환에 힘써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이 밖에도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상당수의 일제 밀정이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포상을 받았다든지, 전범들이 합사된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와 각료들이 참배하는 데 대해 패전국 일본의 ‘멈출 수 없는 관습’이라며 그를 두둔한 대통령실, 일본 해상자위대 국제관함식에서 우리 해군이 욱일승천기를 향해 경례하게 한 결정,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11명이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으며 심지어 서울현충원에는 친일파가 묻힌 ‘장군 제2묘역’이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애국지사 묘역’을 내려다보고 있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사태들이 책에는 즐비하다.
최인훈은 2001년 친일파 인촌 김성수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인촌상을 거부했다. 2012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는 이렇게 일갈하기도 했다. “외적이 침입했을 때 주책바가지 노릇했던 세력이 여전히 행세하고 그 후예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애국운동을 한 이들의 후예는 교육도 못 받고 돈도 없는 하층민이 된 이런 게 자유주의인가? 정말 지킬 건 안 지키고 지키지 말아야 할 것만 지키려 드는 우리 보수는 도대체 어떤 보수인지 묻고 싶다.” 작가가 살아 돌아와 작금의 사태를 본다면 무어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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