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발견한 야생의 언어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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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마당은 여우 땅의 일부인 것 같으니 우리는 이웃이었다."
"자연에 손님으로 방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시인은, 낡은 시골집을 고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야생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시인의 시골집에서 야생과 문명은 그 경계가 흩어지고, 시인은 동식물들과 이웃이 되어간다.
시골집은 야생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시인이 야생의 언어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이 책은 그러한 관찰과 책으로 얻은 지식을 엮어가며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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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니나 버튼 지음, 김희정 옮김 l 열린책들(2024)
“게다가 마당은 여우 땅의 일부인 것 같으니 우리는 이웃이었다.”
이야기는 시인이 여름 별장으로 쓸 수 있는 시골집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연에 손님으로 방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시인은, 낡은 시골집을 고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야생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아니, 야생이 시인에게 성큼 들어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낡은 지붕에 집을 지은 다람쥐가 밤마다 도로록 뛰어다녔고, 개미는 부엌을 침범하다 못해 한쪽 벽 안에 거대한 집을 지었으며, 헛간 옆에는 여우가 굴을 만들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시인의 시골집에서 야생과 문명은 그 경계가 흩어지고, 시인은 동식물들과 이웃이 되어간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그런 이웃 말이다.
언어를 탐구하는 시인인 니나 버튼은 이 책에서 특히 동식물의 언어와 소통을 탐구한다. 꽃에 든 꿀과 꽃가루의 양, 꽃으로 가는 경로까지 묘사하는 벌들의 언어와, 후각과 촉각을 이용해 길을 찾고 정보를 교환하는 개미들, 소리와 진동을 느끼며 화학물질로 서로 소통하는 식물들까지, 동식물의 소통은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로 전달된 생명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알파벳보다 더 오래된 동물들의 언어”를 찾아내기를 소망한다. 시골집은 야생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시인이 야생의 언어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이 책은 그러한 관찰과 책으로 얻은 지식을 엮어가며 쓰였다.
다만, 저자는 오롯이 관찰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시골집 주변의 동식물과 여러 방식으로 연루되어 있다. 그는 다람쥐, 개미, 여우와 같은 동물들로부터 영역을 침범당하고 때로는 침범한다. 때로는 밤늦게 뛰어노는 오소리 새끼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뒷걸음질 치지만, 집 안을 침범한 개미떼는 청소기로 무자비하게 빨아들인다. 그는 동물과 감정적인 교류도 나눈다. 폭풍우가 내리는 무인도에서 텐트 안에 들어온 개미와 깊은 연대감을 느끼며,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종의 구분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야생’이란 무엇인가. 니나 버튼은 “야생의 자연과 나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늘 두 갈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밖에서 전깃불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여우를 사랑하는 마음은 상충되는 것일까? 그러나 곧바로 그는 ‘야생’은 언제나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야생(wild)’은 자유롭거나 적막한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길들여지지 않거나 폭력적인 것을 의미하고, 프랑스어로 ‘야생(sauvage)’은 야생의 생물종, 그리고 은둔자를 의미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거리두기’에서 그는 야생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인간 공동체와는 떨어져 있었지만, 도시와 가까워 완전한 야생의 자연이 아닌 곳에서, 소로는 야생동물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야생’은 인간이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 ‘거리두기’의 미덕을 가진 곳이 아닐까.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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