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김애란이 물었다 “가족이 꼭 미덕인가”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8. 2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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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출간된 두번째 장편
“뒤집어진 가족소설·성장소설”
꾀해 ‘가족의 의미’ 새로 물어
청소년 주인공의 아린 성인 소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김애란 작가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처음 선보이며 “뒤집어진 가족소설 성장소설”로 소개했다. 문학동네 제공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000원

작가 김애란(44)이 받은 문학상을 열거할 땐 필요해도, 작품 목록 땐 필요 없는 말이 있다. 의존명사 ‘등’이다. 2002년 등단 이래 단행본(단독)이라곤 단편소설집 4권과 장편소설 1권, 산문집 1권이 전부인 탓이다. 이번에 나온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김애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2011, 창비) 이후 13년 만이다. 김애란은 이참에 말한다. “표는 안 났지만 저는 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실제 연재까지 했다 매몰한 장편이 있고-오정희 다음으로 최연소 이상문학상을 받은 2013년 일이다-, 지난 6월 출간된 ‘음악소설집’(프란츠)처럼 기획된 주제에 맞춰 내놓은 단편(‘안녕이라 그랬어’)도 있다.

이번 신작을 읽고 직전의 단편 ‘안녕이라 그랬어’를 보면 어떨까 싶다. 김 작가의 소개대로 신작이 청소년기 “성공, 성취를 이루려기보다 반대로 무언가 하지 않으려는, 무언가 그만둔 아이들”의 “재능이 구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 하니, 그 이후의 안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 가족과 성장의 “끈적끈적한” 통념에 맞서는 10대의 두려움과 ‘도망쳐도 된다’는 작가의 다감한 믿음이 장편의 행색이라면, 40대로의 것이 저 단편에 있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간략히 보자. 배려를 모르던, 교사 출신 엄마는 오랜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45살 ‘나’는 긴 간병과 황량한 장례를 치르기까지 7년을 매였다. 직장을 관둬야 했고, 남자친구 헌수도 떠나 ‘보냈다’. 헌수야말로 가난했다. 중학생 때부터 부모 병구완으로 고생만 하다 조실부모했다. 그런데도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새 출발을 모색하던 나는 60대 캐나다인 로버트와 화상 영어를 하게 된다. (그 나이 되도록) 둘은 제 부모를 회상-원망-하며 교감하고, 서로 했던 거짓말 내지 말 못한 비밀을 터놓으며 서로에게 곁을 내준다. 더불어 헌수의 ‘이야기’도 다시금 내 안에서 넓어진다. 하여 이들은 무언가를 얻게 될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의 어떤 전작보다 죽음과 죽음의 기색이 짙다는 데 있다. 고2 겨울방학, 같은 반 안지우, 오채운의 시련과 고통은 작정한 듯 압축되어 있다. 원한 맺힌 비밀을 간직 중이다. 미술 하던 지우의 친부는 오래전 가족을 떠났다. 홀로 된 엄마 지연이 품 넓은 남자 선호를 만나 비로소 사랑을 나눴으나 암에 걸리고 한 달 전 ‘사고’로 죽는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살을 택한 거라 여긴 지우는 곱씹는다. 지연이 ‘정말 나를 위했다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선호도 ‘내가 이 집에서 나가주길 바랄 거’다. 영영 독립할 자금을 마련하려고 지우는 먹고 자며 일하는 공사현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유일하게 가족처럼 여기는 도마뱀 ‘용식’을 반 친구 김소리에게 맡긴다. 왕따 상처가 있던 지우에게 장기인 그림이 위로가 된다. 용식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을 알게 모르게 급우들도 본다.

오채운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더 포악해졌다. 세 치 혀가 가족을 베는 칼이다. 부모는 배운 자들이고, 남들은 때로 외식도 꼬박 챙겨 하는 채운네를 부러워했던 모양이다. 그 가족이 지난해 여름밤 아버지의 주사로 비롯된 사건에 완전히 붕괴되기까지.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버지가 깨어날까 채운은 두렵다, 죽을까 두렵다. 감옥 간 엄마 태선은 채운이 ‘비밀’을 견디지 못할까 두렵다, 자신도 죽어 채운마저 죽을까 두렵다. 채운의 곁에 남은 반려견 뭉치마저 얼마 뒤 죽는다. 태선이 면회 다녀간 채운이 걱정되어 보낸 편지가 어쩌면 이 장편에 실은 작가의 가장 직설적이면서도 의지로 꾹꾹 다진 마음이리라.

“(…) 그런데도 나는 뭔가 감수하는 게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 착각했어. (…) 희생과 인내가 꼭 사랑을 뜻하는 건 아닌데, 그때 나는 이해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두려움을 못 본 척했던 것 같아. (…)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던 상대라 해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어려 아장아장 걷던 채운이 골목으로 들어갈 때마다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다던 태선은 이어 쓴다.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

가장 안온한 가정에서 자란 이답게 김소리는 지우와 채운의 비밀을 공유 받고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막상 사람 결벽과 그로 인한 고립을 자처하는 이다. 혹 ‘곧 죽을 사람’의 손이라도 잡으면 ‘흐리게’ 감지되는 탓이다. 병든 엄마 미정을 아주 오래 돌보던 때도 그랬다. 소리는 3년 전 끝내 떠난 미정의 무덤에서 울며 고백한다. 어느 날인가, 미정이 “흐리게” 보이길 바란 적이 있다고.

2011년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을 펴내고 한겨레와 인터뷰하던 김애란 작가. 소설에선 조로증 걸린 아이가 부모를 되레 걱정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17살 시한부 인생을 통해 ‘가족’의 온기를 명랑히 전했던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부터 작가는 조금 삐뚜름히 ‘가족’과 ‘성장’의 의미를 따져 묻고 있다. 21일 출간 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성장이란 시점 바꾸기”라며 “다른 사람의 자리,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와 그 자리가 더 커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때 가족도 자란다, 가족다워진다. “나 또한 가족 이야기를 썼지만, 끈적끈적한 점성이 건강하지 못하게 작용할 때 있고, 폭력이 일어나는 장소로서의 가족은 남보다 못하단 생각이 든다. 가족이 반드시 지켜야 할 미덕인가.”

‘가족 신화’를 해체하는 사회학, 문학은 줄기찼다. 새삼 해체의 논리가 아니라, 해체의 마음을 이 소설은 보듬는다. 얼어붙은 비밀과 상처가 거짓처럼 녹아 이야기되도록, 가족과 어른의 냉기를 온기로 쥔 자가 이 소설의 작가인 셈이다.

―청소년과 어른, 독자가 딱 둘이라면, 누가 읽길 바라는가.

“성인 독자를 선택할게요. 어떤 일들을 겪고서 나중에 해석되고, 나이 들면서 몸으로 이해되는 말들이 있어요. 가족이든 구원에 대한 이야기든 성인으로서 여러 일들을 겪고 마음 다치셨던 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직접 답변이라면, “적극적 구원은 아니더라도 희미한 온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어른들을 곁에 세워두고 싶었다”는 작중 의도가 성인 독자를 바라는 두 번째 이유고, 10대에 끝이 나는 상처도 불행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럼에도 새 이야기는 또 시작된다는 저 단편 ‘안녕이라 그랬어’가 세 번째 이유 되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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