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충전, 작당 모의’를 하니 ‘책방’이 따라왔네요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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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음악에 진심이었어요.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그는 직전 문화방송(MBC) 사장이었고, 저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풍파를 견딜 수 있도록 쉼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치더라도 음악과 책을 통해 다시 기운 낼 '문화 충전소'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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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 │ 북살롱 오티움
남편은 음악에 진심이었어요. 저는 책에 그랬죠. 다른 이들 못지않게 바쁘게 살아온 삶의 한장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의기투합했습니다.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그는 직전 문화방송(MBC) 사장이었고, 저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입니다. 정부가 방송 장악을 예고한 가운데 험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풍파를 견딜 수 있도록 쉼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치더라도 음악과 책을 통해 다시 기운 낼 ‘문화 충전소’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작년 말 부부가 각각 ‘MBC를 날리면’, ‘정부가 없다’ 책을 낸 뒤 본격적으로 임대 공간을 알아봤고, 봄에 종로2가에 ‘북살롱 오티움’을 열었습니다.
뼈대는 서점입니다. 하지만 서점이 책만 파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죠. 저는 1년여 서촌의 한 서점에서 목요일마다 알바로 일했습니다. 책보다 커피와 술 매출이 더 많았어요. 역삼동의 한 서점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비투비(B2B) 영업 비중이 높았어요. 우리 부부는 살롱에 꽂혔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음악과 책으로 사람을 엮어내는 공간에서 누군가 기운을 충전하고, 누군가 영감을 얻고, 누군가 뭐든 작당하고 모색하면 좋잖아요. 물론 커피와 술도 곁들여서요.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5년 반 해직기자 시절에 직접 스피커를 만들어 사업에 나섰던 전력이 있습니다. 분노와 좌절을 음악으로 달래는 법을 잘 알더군요. 일요일 오후에는 ‘왕초보 클래식’ 등 본격 뮤직클럽을, 토요일 저녁에는 핑크 플로이드,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김민기 등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격주로 함께 듣고 즐기는 음악감상회를 엽니다. 공영방송 이슈로 목소리를 높일 때 맹렬한 그의 눈빛이 음악 행사에는 부드러워집니다.
저는 꽤 오랜 세월 서평을 남겨왔습니다.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도 10년째 했죠. 책은 함께 읽고 토론할 때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작년에 팟캐스트 패널로 책을 소개하면서, 제가 책 이야기에 신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재미있는데 알차고, 유익한데 가슴 저미는 책을 나누는 건 짜릿합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뉴스공장’에서도 책을 소개하는 서점 언니가 됐습니다. 책은 더디지만 세상을 바꿔나간다고, 저도 믿습니다.
친구 집 놀러 가면 서재부터 궁금했던 적 있나요? 어떤 책을 보는지 구경하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서점은 더 그래요. 작은 서점은 어떤 책을 들여놓을지 고심하게 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논픽션으로 맨 앞줄을 채웠습니다. 보통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사회과학은 덜 팔리는 쪽이지만 어떤 책은 진짜 재미있어요. 자기계발 혹은 투자 관련 책은 제가 잘 몰라서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경제나 기업 책, 소설 쪽은 제가 신나서 추천할 책만 소수정예로 엄선했습니다. 슬며시 웃게 되는 책, 개인적으로 위로받은 책들도 따로 모았습니다. 좀 빡빡한 논픽션과 균형을 맞추면 더 좋아요. 오티움 북클럽과 북토크는 진화 중입니다. 책과 사람에게 반하는 시간은 언제나 옳죠.
오티움은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활동, 휴식 등을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당초 동네 이름을 따서 ‘북살롱 관철’을 준비하던 중, 부모를 크게 걱정한 딸이 젊은 감각으로 지어준 이름입니다. 음악과 책으로 쉬는 시간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쉬러 오세요.
글·사진 정혜승 오티움 공동대표
오티움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15길 6 3층
http://www.instagram.com/booksalon.ot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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