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전자약으로 마약 끊는 시대 올까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2024. 8.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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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 질환, 새 치료 전략은… 최근 국내 마약 관련 범죄 급증
다양한 치료 연구 필요성 커져… 충동 조절하는 전전두엽에 작용
금단 현상 줄일 수 있는 전자약… 생체정보 기반 재활 앱 등 주목

최근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새 전략으로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제, 뇌 신경을 자극하는 전자약 등이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국내 연합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의 마약 투약 사건이 알려지며 한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2023년 기준 관세청이 적발한 밀반입 마약은 769kg에 달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4월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청소년 2.6%가 마약류 물질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문구가 피부에 와닿고 있다.

21일 학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적발·처벌에 초점이 맞춰진 마약 관련 정책에서 치료 중심의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마약 중독이 사회 전체에 만연할 경우 밀반입이나 유통을 뿌리 뽑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을 질환으로 보고 적극적인 치료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강웅구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마약 중독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올 리가 없다”며 “범죄자 취급만 하기보다는 중독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의학적 치료를 받으러 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약물 종류, 사용 행태 따라 치료법 달라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존하는 마약 중독 치료법은 아직 한계가 있다. 구자욱 한국뇌연구원 정서-인지질환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마약 중독 관련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은 세밀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기보다 대증요법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다”며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약제나 기기도 아편류 등 일부 마약류에만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약물 종류별로 중독성이 달라 획일적인 치료를 적용할 수도 없다. 강 교수는 “케타민, 엘에스디, 엑스터시, 대마 등은 호기심으로 사용하다 철이 들면 그만둘 수도 있는 약들이지만 정맥주사를 하는 필로폰과 오피오이드 계통 약물인 헤로인, 펜타닐은 끊어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용 행태도 중독에 영향을 미친다. 필로폰의 경우 경구 투여하는 단계에서는 강한 중독에 빠지지 않지만 정맥주사를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용 행태는 약물 종류보다 더 치명적인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중독 장애나 소셜미디어 중독 등 다른 중독이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것처럼 마약 중독도 갈망감을 줄여주는 약물치료, 습관 등을 조절하는 행동치료가 있지만 명쾌한 치료법은 없는 상황이다. 강 교수는 “엘에스디를 몇 번 해본 청소년은 나쁜 친구와 교류를 끊는 것만으로 사용을 중단하기도 하지만 정맥 필로폰 사용자는 현재 존재하는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디지털 치료제가 대안 될 수 있을까

최근에는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새 전략으로 ‘디지털 치료제’와 ‘전자약’이 관심을 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앱, 가상현실(VR) 등 소프트웨어 기반 치료이고 전자약은 뇌 신경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치료다. 두 치료법 모두 실시간으로 환자 모니터링이 가능해 중독 환자의 문제를 신속히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약 중독 치료 전략으로 떠올랐다.

보건복지부 ‘마약중독자 치료 기술 개발 과제’에 참여 중인 전자약 기업 뉴아인의 정아라 전략사업부 매니저는 “마약 중독은 보상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인지행동 제어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에 발생한 기능 이상 및 불균형으로 약물에 대한 과도한 충동과 갈망, 금단 증상이 발생한다”며 “경두개 자기자극법(TMS) 같은 신경 조절 기술을 전전두엽 부위에 적용해 갈망 증상을 완화한 연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오피오이드 중독 환자의 금단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귀에 부착하는 전자약이 FDA 인허가를 받은 사례도 있다. 뉴아인은 삼차신경과 미주신경 자극을 통한 마약 중독 치료법을 찾고 있다.

한국뇌연구원은 디지털 치료제를 통한 중독 재활을 연구 중이다. 마약류 종류와 중독 단계별 생체신호, 생물학적 지표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뒤 중독 물질별, 증상별, 개인별 재발성을 예측하고 재활 예후를 가늠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구 책임연구원은 “일상에서 접근하기 쉬운 디지털 앱 개념 재활 시스템은 개인 맞춤형 재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제 효과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마약 중독으로 정신이 피폐한 상황에서 앱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를 수시로 사용하다 보면 스마트폰에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건강한 활동 유도와 새로운 치료 전략 마련 등 다각도로 접근하는 방안을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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