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문화의 도시 ‘토리노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피에몬테주의 주도인 이 도시에서 올여름의 며칠을 보냈다. 토리노에서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야외 시장은 채소와 과일이 신선하고 저렴했다. 살구 1㎏, 납작복숭아 1㎏, 바질 한 단, 루콜라 한 묶음, 완숙 토마토 한 개, 모차렐라치즈 250g 한 통, 계란 다섯 알을 샀는데 총 1만4천500원. 서울이라면 최소 두 배는 줘야 하는 가격이었다. 마침 부엌이 딸린 아파트에 머물고 있어 매일 장을 봐 아침을 해먹는 즐거움을 누렸다. 바게트를 길게 잘라 모차렐라치즈와 잘 익은 토마토를 썰어 넣고 바질 잎 몇 장을 올리면 이탈리아 국기 색깔의 샌드위치였다. 아침을 먹고 나면 토리노의 엄청난 문화유산을 즐길 차례였다.
프랑스의 론알프스 지역(당시 사보이 지역으로 불렸다)에서 창설된 사보이 가문은 사보이아 백국에서 시작해 공국을 거쳐 사르데냐 왕국, 통일 이탈리아 왕국까지 건설했던 가문이다. 16세기 중반 이후 토리노는 사보이아 가문의 근거지였다. 토리노 혹은 튜린으로 불리는 이 도시는 피아트, 란치아, 알파로메오 같은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음식과 와인이 맛있기로 유명하고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도시라고 해서 토리노를 찾았다. 토리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첫날,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물이 늘어선 산 카를로 광장에 선 순간부터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이 도시가 왜 소문난 관광지가 아닌 걸까. 무솔리니를 기용하는 바람에 이탈리아를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한 데다 쫓겨나서 망명 50년 만에 귀국한 사보이아 가문의 후계자들이 하나같이 한심한 인물들이라 이 도시를 기피하는 건 아닐 테고…. 장엄한 문화유적을 지닌 이 도시는 관광객이 적은 탓인지 시민들이 친절하고 여유가 있었다.
카페 성애자인 필자가 토리노의 명성 자자한 카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카페 알 비체린. 커피에 초콜릿과 크림을 섞은 음료 비체린을 발명한 곳인데 무려 1763년부터 영업을 해왔다. 250년 역사가 깃든 카페는 작고 소박했다.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카페를 시작한 이는 남성이었지만 대대로 여성이 운영해 왔다는 사실. 여성이 가게를 꾸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덕분에 갈 곳 없던 여성들이(그 시절 카페는 남성 전용 구역이었다) 이곳에서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성소 콘솔라타 덕분에 더 안전하게 느꼈다나. 여성 경영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마지막 여주인의 가족과 오래 일한 여성 직원들이 카페를 꾸리고 있다. 비체린은 손잡이가 없는 유리잔을 뜻하는데 이 음료가 이런 잔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붙은 이름. 권위 있(다)는 잡지 감베로 로쏘는 2001년 이곳을 ‘이탈리아 최고의 바’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서 깊은 카페에 단골이 없을 수 없다. 이곳의 단골 손님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 프리드리히 니체, 푸치니(라보엠은 토리노의 극장에서 초연됐다), ‘나무 위의 남작’을 쓴 이탈로 칼비노 등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예 그의 소설 ‘프라하의 공동묘지’에서 이곳을 길게 묘사했는데, 이 카페의 냅킨에 소설의 그 부분이 적혀 있다. 필자는 에코의 글이 적힌 냅킨 한 장을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아무튼 토리노의 대표 음료인 비체린을 원조집에서 마셔봤는데(안동소주를 안동 종가댁에 가서 마신 셈이랄까) 초콜릿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한 잔은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맛이었다. 에스프레소 위에 핫초콜릿, 그 위에 다시 크림을 부은 칼로리 대폭발 음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이 카페는 특별한지 조용히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보였다. 계산서를 받아보니 비체린 한 잔의 가격은 7.9유로. 우리 돈 1만2천원에 육박했다. 계산할 때 살짝 손이 떨렸다.
토리노는 니체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말년까지 니체를 괴롭힌 정신질환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니체가 토리노에 머물던 시절,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선 그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얻어맞고 쓰러지는 말을 보게 된다. 그는 온 몸으로 마부를 가로막으며 말을 끌어안고 울다가 혼절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니체는 정신을 놓고, 10여년 간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죽음에 이른다. 니체의 이 행동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광장 근처 니체가 머물던 하숙집을 찾아갔다가 피를 나눈 남자에게 니체의 집 사진을 보냈다. 니체의 일화가 등장하는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는 자타공인 문학청년에 영화광이라 분명 봤을 거라 생각했다. 곧 답이 왔다. “토리노의 말 보다가 중도 포기. 타르코프스키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영화. 말과 인간을 함께 희생시키는 영화였다”는 말에 혼자 웃었다.
토리노에는 궁전이 많다. 이탈리아가 공화국이 된 후 사보이아 왕족은 망명을 떠났는데(97년 이후 귀국이 자유로워졌다) 그들이 남긴 궁 열 네 곳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됐고 나는 다섯 곳을 방문했다. 가장 좋았던 곳은 토리노 외곽에 자리한 베나리아 레알레 궁이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데 광대한 정원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인 장소 곳곳에 현대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더욱 생기 있는 공간이 됐다. 토리노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박물관은 몰레 안토넬리아나. 토리노시의 건축적 상징인 이 건물은 형이상학파 화가 키리코의 그림에도 몇 번이나 등장한다. 1863년 건축가 알레산드로 안토넬리가 설계한 건물의 높이는 167.5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석조 건물이었다. 토리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줄은 긴데 영화 박물관 줄은 짧았다. 전망대를 빼고 영화 박물관만 둘러봤다. 토리노는 189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도시. 영화 박물관은 생각보다 재미난 곳이었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를 세세히 구분해 전시하고 최초의 카메라 장비며 촬영도구도 있고 영화 촬영의 과학적 배경도 친절히 설명해준다. 제일 재밌는 건 실제로 영화에 사용된 소품 전시였다. 해리포터의 지팡이부터 스파이더맨의 옷, 매트릭스의 총알 같은 것들. 토리노는 3박4일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도시였다. 이탈리아는 몇 번을 와도 늘 새롭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도시 볼로냐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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