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풋볼 코치 출신 월즈 “마지막 4쿼터, 공격 시작됐다”
“매일 밤 전화 한 통을 기다리며 기도했던 기억, (난임) 치료 효과가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고통이 생생합니다. 6년이란 긴 기다림 끝에 딸 호프, 아들 거스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너희들이 내 세상에 전부야!”
21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위해 전당대회 무대에 오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객석의 첫 줄에 앉아 있던 자녀들에게 “아이들아 사랑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열일곱 살 된 아들은 눈물을 터뜨렸고,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 모인 2만 인파가 격려의 박수를 쏟아냈다.
월즈는 이날 20분 연설에 교사, 풋볼 코치, 주(州) 방위군까지 거치면서 미국의 기성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온 자신의 경력과 개인사를 녹여냈다. 이 중에서도 그가 여느 평범한 미국인들과 같이 “자녀와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한 아빠”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월즈가 어려서 학습 장애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자신의 ‘아픈 손가락’ 아들 거스에게 애정을 표시할 때 객석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월즈가 연설을 마친 뒤 가족들은 무대에 올라왔고, 지지자들은 이들이 포옹하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을 보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월즈는 이날 “나에 대한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는 건 인생의 큰 영광”이라며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위대한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중서부 네브래스카주의 인구 400명도 안 되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월즈는 “우리 반은 24명밖에 되지 않았고 아무도 예일대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이웃끼리 서로 살갑게 챙기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월즈는 “우리 모두는 마땅히 공동체에 기여하고 헌신해야 한다”며 “6·25 참전용사였던 부친의 뒤를 이어 17번째 생일을 맞은 지 이틀 만에 주 방위군에 이름을 올렸다”고 했다. 배우자 그웬은 “부친이 6·25 참전용사란 사실은 월즈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사회 과목 교사로 20년을 넘게 일한 월즈는 “다시는 공립학교 선생님을 무시하지 말라”고도 했다. 교사 시절 풋볼 코치를 맡아 고등학교 팀을 미네소타주 챔피언 자리까지 올려놓았다는 그다. 이날 무대에서 월즈를 소개한 것도 벤 잉그먼을 비롯한 맨카토 웨스트 고등학교 출신 제자들이었다. 이 중 잉그먼은 1996년 월즈와 농구를 하던 중 부친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경우다. 이는 월즈가 주지사가 되어 강경한 교통안전 정책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 잉그먼은 학창 시절 월즈가 급식비가 없는 학생을 자신의 사비를 털어 도왔던 사연을 들려주면서 “이토록 진정성 있고 사려 깊은 그는 부통령직에 제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제자들은 “월즈는 항상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려 했다” “월즈는 지치지 않는 탱크처럼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쏟았다” “월즈를 보면서 선생님이 되기로 했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고 했다.
월즈는 이날 “풋볼로 치면 지금은 마지막 4쿼터”라며 “우리가 공을 잡았고 이제 공격이 시작됐다. 그 누구보다 준비가 잘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앞세워 남은 76일 동안 하루에 1야드씩 전진하자”고 했다. “한 통의 전화, 한 번의 방문, 한 번의 기부가 정말 중요하다. 76일 뒤에 우리가 잘 수 있는 시간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그들은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며 “우리는 절대 뒤로 가거나 과거로 퇴행할 수 없다”고 했다. 월즈는 헤리티지재단의 차기 보수 정책공약집으로 극단적이란 비난을 받는 ‘프로젝트 2025′에 대해 “트럼프가 거리두기를 하기 바쁘지만 나는 풋볼 코치를 해봐서 안다. 쓰지도 않을 플레이북(playbook·풋볼에서 팀의 공수 작전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을 들고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날 무대에 올랐다. 퇴임 후 여러 차례 심장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큰 무리 없이 30분 연설을 소화했다. 클린턴 “이틀 전 78번째 생일을 맞아 4대에 걸친 가족 중 최고령자가 됐다”면서 “그래도 나는 트럼프보다는 젊다”고 했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같은 1946년생이지만 트럼프가 생일이 두 달 더 빠르다.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부각하며 재미를 봤던 트럼프에게 ‘뼈 있는’ 농담을 날린 것이다. 클린턴은 “대선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직업인 대통령을 뽑는 가장 위대한 면접 같은 것”이라며 “우리에겐 명확한 선택지가 있고, 기회가 왔으니 잡으라”고 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선 현직인 바이든과 배우자 질 여사, 전직인 클린턴·오바마 부부 등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 해리스 지지를 호소했다. 100번째 생일을 앞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손자 제이슨을 보냈는데, 제이슨은 “할아버지가 해리스에 투표하는 대선을 손에 꼽으며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고(故)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외손자인 잭 슐로스버그도 무대 위에 올랐다. 마지막 날인 22일엔 해리스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나흘에 걸친 전당대회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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