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이 모자란다, 반도체 ‘쩐의 전쟁’

장형태 기자 2024. 8. 2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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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투자 비용도 눈덩이
그래픽=이철원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을 목표로 도요타·소니 등이 합작 설립한 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가 공장 착공 1년도 안 돼 자금난에 봉착했다. 지금까지 정부 보조금 9200억엔(약 8조5000억원)을 포함해 확보한 자금은 약 1조엔(약 9조원). 하지만 예정대로 2027년 첨단 반도체 양산을 위해서는 4조엔(약 37조원)이 더 필요하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 21일 “라피더스가 일본정책투자은행 등 4개 은행에 총 1000억엔(약 9170억원) 대출을 요청했지만,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2022년 설립된 라피더스는 TSMC(대만)·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두 회사의 주력 공정인 3~4나노 공정을 건너뛰고 바로 2나노로 진입한다는 계획이지만,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 구축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라피더스뿐 아니다. 지난 2~3년 동안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본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인텔·마이크론·라피더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 6곳의 투자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올해 반도체 공장 신·증설에 투자하는 금액은 총 154조원. 반면 이 회사들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모두 합쳐 100조원에 그친다. 수익으로 투자금을 대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픽=이철원

◇공장 하나 짓는 데 최대 50조

첨단 반도체 제조업은 ‘돈 먹는 하마’로 유명하다. 최근엔 그 생산 시설 투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장비의 크기와 가격이 급등하고, 그에 따라 공장 규모가 커지고, 건축비는 매년 상승하기 때문이다.

첨단 반도체일수록 나노 단위 미세한 공정이 필수적이다. 반도체 회사들은 추진 중인 생산 시설에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하이 NA EUV’ 도입을 계획 중이다. 대당 가격이 5000억원이 넘는다. 공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18년 삼성전자가 평택에 지은 2공장의 최대 길이는 400m, 4년 후 준공한 3공장 최대 길이는 700m에 달한다. 최근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제조) 공장과 패키징(최종 조립) 공장이 서로 연계되는 것이 추세라, 공장 크기가 더 커질 전망이다.

실제 2010년대까지 반도체 공장 1개 라인 신설에 10조원대가 들었다. 3~4년 전부터 20조~30조원까지 뛰었다. 현재 추진 중인 파운드리 공장 비용은 최대 5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용 급증에도 투자를 늦추기 힘든 것이 반도체 제조 기업들의 딜레마다. 투자를 줄였다가 경쟁에서 도태되면 따라잡는 데 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건설에 최소 2년이 걸리는데, 투자를 늦추면 호황기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반도체 기업들, 실탄 확보 비상

반도체 투자 ‘쩐의 전쟁’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 지형을 재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기업이 결국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인텔은 올해 미국 정부의 195억달러(약 26조원) 지원에도 불구하고 올해 1·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인텔은 내년 말까지 인력을 15% 이상 감축하고, 미국을 제외한 해외 공장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은 투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향후 10여 년간 40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 100조7955억원을 확보했다. 삼성전자가 현금 보유량 100조원을 넘긴 것은 5분기 만이다. SK하이닉스도 보유 현금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2027년까지 100조원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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