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주부도… 100조원 일본 패션 시장에 ‘K룩’ 돌풍
지난 5월 24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의류 매장 입구가 개장 전부터 길게 줄을 선 일본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일본 유통 그룹 파르코가 현대백화점과 공동으로 국내 패션 브랜드 ‘마뗑킴’의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를 처음으로 여는 날이었는데, 문을 열기 훨씬 전부터 고객들이 몰리는 ‘오픈 런’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3000여 명이 찾아와 역대 한국 패션 팝업 스토어 중 가장 많은 방문객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까지 약 두 달 동안 이곳에서 마뗑킴을 비롯한 K패션 브랜드 11곳의 팝업 스토어가 열렸고, 매출 33억원을 올렸다.
◇日서 순항하는 K패션 플랫폼
한국 패션에 대한 일본 MZ 세대의 선호가 급증하면서 이른바 ‘K패션’ 플랫폼이 일본의 온·오프라인 시장으로 잇따라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여성 의류 쇼핑몰 ‘에이블리’는 지난해 10월 자사 쇼핑몰에 입점한 판매자들이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에이블리에 입점한 판매자들이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해외 판매 연동’을 누르면, 에이블리의 일본 쇼핑몰 플랫폼 ‘아무드’에 게시되고 일본 고객 대상 판매와 배송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게시물 번역과 해외 배송, 통관, 고객 응대 등 일련의 서비스 자동화를 에이블리가 구축한 것이다.
에이블리는 아무드 출시 약 10개월이 지난 22일, 총 5500여 매장이 아무드를 통해 일본에 진출해 누적 185만개의 패션·뷰티 상품을 등록했다고 밝혔다. 아무드의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전월 대비 20%, 거래액은 30% 늘었다.
일본 MZ 세대를 겨냥한 K패션 플랫폼들의 진출은 202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패션 플랫폼 메디쿼터스가 2020년 일본 서비스인 ‘누구(NUGU)’를 출시해 작년 거래액 50억엔(약 460억원)에 이를 정도로 안착했다. MAU는 180만명에 달한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2021년 일본 법인 ‘무신사재팬’을 세우고 팝업 스토어,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운영 중이다. 무신사 관계자는 “일본·미국·대만 등에 진출했는데, 일본 사업 비율이 약 40%로 가장 크다”며 “일본은 다른 국가들로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고 했다.
◇한류에 소셜미디어 열풍 힘입어
일본은 대표적 패션 강국이다. 시장 규모가 한국의 2배인 100조원대로 추정된다.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 일본에서 유명 디자이너들이 등장해 일본 패션을 세계에 알렸고, 이후 한국에도 빠르게 스며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내 패션계에 ‘일류(日流)’ ‘닛폰(Nippon) 스타일’ 등이 유행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패션이 일본에서 반짝 유행한 적은 있었다. 동대문 시장의 의류가 보따리상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일본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드라마 등 K콘텐츠 열풍이 서서히 수그러들며 K패션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이에 비해 최근 일본의 K패션 플랫폼 인기는 한국 스타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과 IT(정보기술) 기기 확산이 더해져 만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행에 민감한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 패션 소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며, K패션 콘텐츠가 늘어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니혼게자이신문은 “한국 아이돌 소식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고 젊은 층 사이에서 ‘추종’ 현상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쇼핑몰 사이트인 라쿠텐 라쿠마의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한국 패션을 가장 참고한다’고 답한 비율은 10~40대 여성과 60대 이상 여성에서 나란히 1위를 했다. 특히 10대의 경우 75.9%가 1위로 한국을 꼽았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국이 일본 패션을 참고해 성장했다면, 이젠 일본이 한국 유행에 반응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K패션 플랫폼이 제공하는 인공지능(AI) 기반 기술이 일본 MZ세대에서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예컨대 에이블리는 이용자가 입고 싶은 의류 사진을 찍어 앱에 올리면, AI가 비슷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기능을 지난달 아무드에 도입했다. 이 기능을 사용한 일본 이용자는 한 달 사이에 158% 늘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AI 기능이 일본에서 호응을 얻어 현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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