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장삼이사들의 당파 싸움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장 2024. 8. 23. 0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 늦은 저녁 모임에서 몇 사람이 말싸움을 벌였다. 정치 담론의 허울을 쓴, 식상한 난타전. 정확히 ‘여야’ 두 편으로 갈렸다. 몇 친구의 개입으로 확대되진 않았지만, 정리되고 나서도 뒷맛이 씁쓸했다. 정치인의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저질 인사들의 멱살잡이가 시중의 장삼이사들을 격동시키는 문제적 현실이 드러난 현장이었다.

최근의 다른 모임. 싸우기 좋은 판 구성이었다. 양측의 투사들이 나섰고, 일의 전개 양상을 빤히 내다보는 몇 친구가 그들을 주저앉혔다. 그중 한 친구가 ‘이제부터 이 모임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말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는 단톡방에 ‘가까울수록 정치와 종교 얘기는 안 하는 게 상책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이기에 지인이 보내준 글 이곳에 내려놓고 가네’라는 멘트와 함께 진한 정치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중앙 정치의 구도가 지역 주민의 의식까지 지배한다. 권력의 탈취와 독점만을 노리는 당파 싸움을 정치로 착각하는 불량 인사들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민생 정책이나 국가 비전 등에 관한 어젠다(agenda)의 체계적 논의가 정치 담론이다. 그러니 그들의 말은 좋게 보아 단편적 ‘이슈(issue)’ 논쟁, 나쁘게 보아 패싸움의 도발적 막말에 불과하다. 상대의 약점을 부각하고 거짓을 날조하여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는 꼼수가 정치는 아니다. 정치 담론을 형성하는 올바른 생각이나 지식의 체계가 힘을 발휘해야 국민의 마음은 움직이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권력이다. 그걸 모르는 자들이 정치인으로 행세하는 현실의 폐해가 정점으로 치닫는 요즈음이다.

‘정치의 인간(homo politicus)’이란 말처럼 인간은 정치를 떠날 수 없다. 노나라 계강자가 정치에 대하여 묻자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니, 그대가 바름으로 백성을 이끌면 뉘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라고 답한 공자의 말에 열쇠는 있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국민이 나서서 민생 안정과 나라의 비전에 대하여 토론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파 싸움일 뿐, 제대로 된 정치 담론이나 이야기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