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78] 카이로 선언의 의미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2024. 8. 2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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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자리를 함께한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왼쪽부터). 세 사람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장악한 모든 영토를 내놓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카이로 선언’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손꼽힌다. 위화도 회군 없는 조선 건국을 생각하기 어렵듯 카이로 선언을 빼고 한국의 독립을 논할 수 없다. 1910년 병합 이후 조선을 불가분 영토로 간주하던 일본에 이는 날벼락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사실상 열강의 병합 승인이 철회된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계속 차지하려면 전쟁에서 이기는 길밖에 없었다.

구한말 이래 치욕을 맛보던 외교전에서 대역전극이 펼쳐진 배경에는 루스벨트와 장제스의 마음을 움직인 임시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불행히도 임정은 연합국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복잡한 내부 사정과 연합국의 이해득실 계산이 빚은 결과였다. 그러한 난맥상에도 연합국 수뇌가 한반도 독립을 공언한 데에는 ‘소련 팩터’가 있었다. 극동군이 공산주의에 경도된 조선인을 포섭하여 전력화하고 있으며, 대일 개전(開戰) 시 이들을 앞세워 한반도 진군과 소비에트 팽창을 획책할 것이라는 임정 인사들의 경고와 설득이 연합국의 전쟁 구상에 중요한 논점을 제공한 것이다.

임정의 후원자로 광복군 창설 산파역을 맡은 국민당 간부 주자화(朱家驊)는 1942년 임정 승인을 장제스에게 건의하면서, 소련의 한반도 소비에트 정부 수립 및 승인 선점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임정을 조속히 승인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국민당 수뇌부도 공유하고 있었고, 미국 측에도 전달되었다.

이러한 예측이 옳았음은 소련의 기회주의적 대일 참전과 치밀한 한반도 공산화 행보로 극명하게 입증되었다. 카이로 선언의 독립 조항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일제 패퇴와 함께 한반도가 소련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반파시즘 연대의 의지가 전제된 것이고, 선언에 뜻을 같이한 임정 지도부는 그에 대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광복의 의의와 해방 정국 혼란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카이로 선언의 의미부터 제대로 음미해야만 한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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