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방’ 같은 텔레그램 성범죄, 온라인 잠입보다 강력한 대안 절실
‘대학생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집단 성범죄’ 사건에서 성범죄물 유포 혐의로 구속된 30대 남성 유아무개씨가 노란색 수의를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22일 오후 서울고법 항소심 법정에 섰다. 1심에서 받은 징역 1년이 너무 가혹하다는 게 항소 이유였다. 문제의 텔레그램 대화방 참가자는 1200명에 이르지만, 경찰에 검거돼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유씨가 유일하다. 경찰의 추가 수사 성과는 유포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2명을 입건한 것뿐이다. 대화방을 개설했거나 불법합성물을 제작한 가해자들은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불법합성물 제작·유포 성범죄가 대학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만연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수사 방식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기존 경찰 수사 방식이 통하지 않는 ‘온라인 무법지대’에서 벌어지는 범죄 특성상 더 강력한 수사기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잠입·위장수사의 허용 범위를 넓히거나 수사 대상자를 국가가 해킹하는 ‘온라인 수색’까지도 논의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부터 사이버성폭력 사건은 일선 경찰서가 아닌 시·도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맡는다. 다만 동원 가능한 수사기법은 제한적이다. 현재 경찰은 성범죄물이 유포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직접 들어가 참가자들과 친분을 쌓고, 정보를 모으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이 이용자 정보 제공 등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상급 경찰관서장 사전승인이나 법원 허가 뒤 좀 더 적극적인 위장 수사가 가능하지만, 대화방이 ‘떴다방’처럼 수시로 생겼다 사라지는 상황에 대응하긴 역부족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화방에서 단서를 잡는데는 오래 걸리지만, 범인들은 조금만 수상한 기미가 느껴지면 방을 새로 판다. 대화방이 없어지면 수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 지역 대학생 불법합성물 성범죄 사건도 수사 도중 대화방이 사라지면서 수사가 일시 중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합성물 성범죄는 범죄 문턱은 낮은 반면, 피해는 유포 순간부터 완전한 삭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범죄 혐의자를 특정하는 수사 기법은 범죄 기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범죄화’된 4년 사이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여전히 경미한 범죄로 보고 있다”며 “사이버 수사 전문성이나 기법 개발이 중요한데, 여전히 수사 역량은 지역 간 편차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 탓에 디지털 기반 성범죄에 한해선 ‘화이트해킹’ 등 특단의 수사기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은 2017년부터 수사 대상자의 컴퓨터·스마트폰에 몰래 스파이웨어를 설치해 저장된 정보를 열람하거나 시스템 이용을 감시하는 ‘온라인 수색’을 도입했다. 아동 성착취물 유포·취득·소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죄 등에 한해 적용한다. 윤지영 형사법무정책연구원 형사정책연구본부장은 “일반적인 수사기법으로 접근조차 안 되는 디지털 범죄 특성상 잠입·위장수사 등 다양한 기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온라인 수색도 그중 하나고 도입만으로 범죄 위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독일에서도 이런 수사 방식에 대해선 ‘기본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 수색은 2008년부터 수차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법 개정을 반복하며, 수사가 허용되는 요건을 더욱 엄격히 정비하고 있다. 장응혁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온라인 수색은 감시에 가까운 행위라 수사상 쓸 수 있는 극약처방이고 국가가 남용할 우려도 있지만, 아동 대상 디지털 성범죄 등 중대범죄에 한해 제한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디지털 범죄에서 몇몇 행위자를 잡는 것을 넘어 범죄 생태계를 해체하는 쪽으로 대응 전략을 바꾸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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