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할 것도 없는데 뒤를 못 돌아보겠네[낙서일람 樂書一覽]
우치다 햣켄 지음 | 김소운 옮김 글항아리 | 256쪽 | 1만4400원
어느 늦여름 밤, ‘나’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깜깜한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괜스레 무서운 생각이 든다. 마침 길 끝에 아직 영업 중인 빙수가게가 보여 들어간다. 그런데 빙수가게 주인 남자가 좀 수상하다. 흔하디흔한 스이(꿀이나 설탕을 탄 얼음물을 가리키는 속어)를 시켰는데 도리어 스이가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더니 안절부절못하며 자꾸 나에게 뒤를 돌아보라고 한다. 건너편 묘지에서 ‘도깨비불’이라도 본 걸까.
주인 남자는 갑자기 술 한잔 하자며 소주를 내온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안색이 갈수록 창백해지더니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캐묻기 시작한다. “요 앞에서” 왔다고 답하자 아예 파랗게 질려버린다. 주인 남자와 함께 있으니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떠올라서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만 일어서려는데 주인 남자는 갑자기 얼마 전 죽은 아내가 집 안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금도 죽은 아내가 거실에 앉아 있어 밖으로 나왔다며.
<우치다 햣켄 기담집>에 실린 ‘개짖는 소리’에선 두 남자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깊은 밤, 인적 없는 가게에서 불안에 떠는 주인과 무서운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나’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기이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화가 지속될수록 으스스한 긴장감이 고조되고 주인 남자가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죽은 아내’의 사연으로 불안의 정체가 밝혀지는가 싶지만, 이야기는 뜻밖의 식스센스급 반전으로 치닫는다.
일본 ‘분위기 공포문학’ 1인자로 평가받는 우치다 햣켄의 단편 걸작선이다. 요란한 사건은 없지만 더운 여름밤, 서늘한 전율이 느껴지는 이야기 15편이 실렸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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