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확보하라” 대항해시대 각축전 벌인 유럽 열강[책과 삶]
한겨레출판 | 316쪽 | 2만원
많은 역사학자는 세계사의 주요한 변곡점이 된 대항해시대를 연 기폭제가 향신료였다고 이야기한다. 후추로 대표되는, 동양에서 나는 신비로운 향신료는 15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황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고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대상이었다. 귀한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는 치열한 경쟁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향신료 전쟁>은 대항해시대 향신료를 두고 벌어졌던 유럽 열강의 각축전을 그린 책이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들이 향신료를 향한 ‘탐욕’으로 어떻게 엎치락뒤치락했는지 보여주는데, 그 무대로 ‘스파이스 제도’에 집중한다.
향신료 중에서도 특히나 인기가 높았던 것은 정향과 육두구다. 국내에서 비교적 낯선 정향과 육두구(둘 다 마라탕에 사용된다)는 요리의 풍미를 높이고 감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매력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그런데 이 두 향신료는 다른 것들과 달리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 일명 스파이스 제도라 불리는 곳에서만 났다. 이곳을 독점해야만 막대한 부와 해상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터라 스파이스 제도 역시 살육과 약탈의 비극을 비껴가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부각되는 인물이 ‘얀 쿤’이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하는 데 기초를 다진 국민영웅이지만 스파이스 제도 원주민들을 학살한 약탈자다. 스파이스 제도에서도 육두구의 고향으로 불리는 반다 일대에서 벌어진 학살은 별도의 챕터로 할애돼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30년간 80개국에서 사업과 여행을 해온 독립연구자다. 그가 주로 머물렀던 곳이 주요 향신료 산지다. 역사적 현장 속에 자신의 경험을 조금씩 녹여낸 덕분에 여느 역사책과 달리 현장감을 더해준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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