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폭력이 배설물처럼 드러날 때[책과 삶]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 임도울 옮김 문학과지성사 | 224쪽 | 1만5000원
라틴아메리카 작가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소설은 강렬하다. 밖으로 쏟아나온 내장과 피, 배설물이 가득하다. 우리가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을 밖으로 분출하면서, 사회 속 은폐된 폭력과 착취를 드러내 보인다. 내장이나 피, 배설물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가장 내밀한 신체의 내부인 것처럼, 암푸에로가 폭로하고자 하는 장소는 사회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장소, 바로 가족이다.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경매’는 암푸에로가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 강렬하다. 주인공은 투계꾼인 아빠를 따라 투계장에서 지낸다. 투계장 주변의 남자들은 주인공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다.
어느 날 자신의 몸을 만지고 치마를 들추던 남자들이 닭의 창자와 피와 닭똥을 보고는 구역질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몸에 피와 창자를 범벅한다. “네 딸은 괴물이야.” 뒤이어 펼쳐지는 인신매매의 현장과,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길 선택하는 주인공의 행동이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는 ‘괴물’의 가사도우미 나르시사의 말은 이 땅의 약자들이 유념해야 할 유일한 격언이다.
엄마와 아빠, 쌍둥이 자매, 열네 살 가사도우미로 이뤄진 집은 유복하고 단란해 보인다. 하지만 자매는 날마다 공포영화를 보며 악몽에 시달리고, 부모는 무관심하다. 자매가 첫 생리를 한 날, 나르시사는 “이제 진짜로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자매는 나르시사가 지내는 차고에서 나오는 아빠를 목격한 뒤 뺨을 얻어맞는다.
코세차 에녜상 수상작 ‘월남’은 성에 눈을 뜬 10대의 일탈, 집안에 은밀히 숨겨진 폭력, 월남전의 상처를 엮어낸 수작이다. ‘수난’에서 성경 속 막달라 마리아를 과감하게 재해석하며 예수의 수난사를 다시 쓴다. 예수의 기적이 사실은 ‘마녀’로 몰려 박해받았던 마리아가 행한 일이었음을 이야기하며, 역사 속에 지워진 여성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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