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전투식량

김태훈 논설위원 2024. 8. 2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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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전투식량의 발전사는 수분을 어떻게 빼느냐의 역사였다. 음식의 부패 때문이었다. 고대 로마 병사들은 유럽을 제패할 때 수분을 뺀 건빵을 들고 전투에 나섰다. 12세기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병은 말린 고기 가루인 보르츠를 말 안장에 달고 싸움터로 갔다. 그러나 보르츠건 건빵이건 수분이 없는 탓에 맛은 거의 포기해야 했다. 오늘날 건빵에 별사탕이 들어 있는 것도 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침샘을 자극해 입안에 수분을 퍼지게 하는 용도라고 한다.

▶물기가 있는 근대적 전투식량의 시초는 1809년 나폴레옹이 전투식량 보존 아이디어를 전국에 공모할 때 1등으로 뽑힌 병조림이었다. 건조하지 않아 먹기 수월하고 열량이 높았지만 여전히 맛은 형편없었다. 참호전으로 치러진 1차 세계대전은 병조림을 먹으며 싸운 전쟁이었다. 병에 담긴 차가운 죽과 고기 스튜를 먹은 군인들은 ‘이틀 굶어도 먹을 수 없는 맛’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래 보존되고 먹기 수월하면서도 맛도 좋은 전투식량 개발은 지금도 세계 각국이 심혈을 쏟는 분야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 인스턴트 커피를 선보였고, 스페인은 내전 당시 설탕 입힌 초콜릿을 보급했다. 이탈리아 전투식량엔 입맛을 돋우라며 식전 술까지 들어 있다. 스팸도 2차 대전 때 미군에 보급되기 시작한 전투식량이었다. 우리 군은 베트남 전쟁 전까지만 해도 전투식량이라 할 게 없었다. 6·25 때 국군은 주먹밥과 미숫가루, 말린 쌀을 먹고 싸웠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에서 1967년 흰밥과 김치, 파래무침, 콩자반 등을 곁들인 ‘K레이션’이 첫선을 보였다. 그래도 통조림 형태라 맛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전투식량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발열팩이 들어 있어 불과 물 없이도 요리가 된다. 고기볶음밥, 마파두부밥, 닭갈비, 피자, 파스타 등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좋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한국 전투식량에 들어 있는 햄볶음밥과 양념소시지를 먹고 아몬드케이크 후식까지 맛본 뒤 ‘엄지 척’ 하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7~2018년 우리 군에 납품된 전투식량에서 하자가 드러나 군과 제조 업체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투식량에 포함된 참기름 등의 유통기한이 잘못된 것이 밝혀지면서다. 그 전에도 전투식량에서 고무줄이나 벌레가 나온 적이 있다. 장병이 먹는 식량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전투력 유지의 핵심이다. 나폴레옹은 “잘 먹은 군인이 잘 싸운다”고 했다. 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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