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137) 문익점
고려 공민왕이 친원파의 핵심인 기철을 척살하고 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자, 기철의 여동생이자 원나라 황후였던 기황후는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홍건적에 의해 수도 개경까지 함락당한 공민왕은 홍건적 견제를 위해 원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공민왕은 사신단을 원에 파견했지만, 기황후는 오히려 덕흥군(충선왕의 아들)을 고려의 왕으로 세우려 했다. 이에 원나라에 있던 사신들 대다수가 덕흥군을 왕으로 모시고 원의 후원하에 고려를 침입하지만, 최영과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 패배했다.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은 덕흥군 편에 섰다. 반역 주도자들은 고려로 압송되어 처형되었지만 문익점은 마지못한 가담으로 인정되었던 것인지 파직에 그쳤다. <고려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덕흥군에게 의부하였으나 덕흥이 패함에 미쳐 돌아왔다.” 고려로 돌아오면서 문익점은 역사에 남을 일을 한다. 면화씨를 챙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의 내용이다.
“(…)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 조정에 갔다가, 장차 돌아오려고 할 때에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문익점이 면화씨를 처음 가져온 사람도 아니고, 공민왕을 지지하다 원에서 귀양살이를 한 것도 아니며, 면화씨가 금수품목이 아니었기에 몰래 가져온 것도 아니고, 붓두껍에 넣어 가져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부 후세 사람들이 살을 붙이고 채색을 한 스토리텔링이다. 특히 문익점은 이색(李穡)과 동문수학했기에, 그 후예인 권근, 김굉필 등 ‘사림’이 문익점 미화에 앞장섰다. 민간설화가 더해져 희대의 ‘밀수 영웅’ 문익점이 탄생한 것이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가면 문익점이 목화를 처음 재배했다는 ‘목면시배유지’(사적 제108호)가 있다. 산청은 문익점의 고향이다. 벼슬을 잃고 낙향한 문익점이 장인 정천익 등과 함께 면화 재배에 성공한 곳이다. 지금도 면화가 심어져 있는 시배지 뒤에는 사진 속의 ‘삼우당문선생면화시배사적비’가 있다. 1965년 이곳이 조성될 때 세워진 것으로, 2023년 사진을 보면 검은 비석만 그대로이고 위아래 동물 문양과 받침대, 축대 등은 다 바뀌었다.
이야기를 꾸미지 않아도 문익점의 역사적 공로는 엷어지지 않는다. 정치인 문익점은 실패했지만 백성 모두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했으니, 이것이 진정한 정치가 아닐까?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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