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세 단어 경제학 : 공짜 점심은 없다

기자 2024. 8.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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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점심은 없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까닭 없이 베푸는 호의를 경계하라는 경구로 삼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선술집에서 술을 한 잔만 마셔도 공짜로 점심을 제공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한가한 낮 시간대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상품이었겠지만, 주당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는데, 술 한 잔이면 밥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반겼을 법하다. 비록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다시 석 잔으로 이어지긴 했어도 말이다.

효율적인 시장경제의 기본 전제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세상사 온갖 분야에 두루 통용되는 격언이지만, 아무래도 경제학에서 가장 널리 쓰인다. 많은 경제학자가, 이 말을 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두인 프리드먼 교수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이전부터 쓰였던 말이다. SF 마니아라면 거장 하인라인의 소설 <달은 무자비한 여왕>에서 이 말이 인용됐음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말이 등장한 첫 공식 문건은 텍사스 지역 신문의 1938년 6월27일자 칼럼 ‘여덟 단어 경제학’이다. 칼럼 내용은 우화였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다.

“옛날 바빌론의 왕이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안타까워하다가, 왕국의 경제학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서 해결책을 제시하게 했다. 2010명의 학자들이 1년을 연구한 끝에 온갖 차트와 그래프가 난무하는 분량이 600쪽인 87권의 책을 저술해 바쳤다. 왕은 너무 길다고 화를 내며 병사들을 시켜 절반의 경제학자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리고 남은 1005명의 경제학자에게 내용을 줄여오라고 명했다. 다시 1년 뒤 이들은 차트와 그래프를 삭제하고 67권으로 줄인 책을 바쳤다. 왕은 대로하며 다시 절반의 학자들을 죽였다. 1년마다 내용을 줄인 책을 바치고 왕은 화를 내며 절반을 죽이는 행위가 반복됐다. 세월이 흘러서 최후의 1인이 남았고, 그는 왕에게 87권 책 내용의 정수를 담은 한 문장을 말했으니, 그게 바로 ‘공짜 점심은 없다(우리말로는 세 단어이지만 영어로는 여덟 단어이다)’였다.”

경제 원리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압축해서 표현한 문장을 찾기는 어렵다. 경제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담은 이 문장은,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 성과를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시장경제 참여자들, 가령 새내기 직장인이나 신규 자영업자에게 이를 명심하라고 주지시킬 필요도 없다. 이를 신신당부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정부 부문 종사자이다.

정부라고 해서 공짜 점심이 가능할 리 없다. 정부지출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재원으로 한다. 전혀 공짜가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과 달리 비용과 혜택이 직접 연결돼 있지는 않다. 점심으로 남산 왕돈가스를 먹으려면 1만3000원을 내야 한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기에, 몰려 있는 자칭 원조집 4곳 중 가장 맛집을 골라 간다. 정부지출은 다르다. 결국에는 누군가 부담하겠지만, 당장 내가 보는 혜택에 대한 비용을 내가 지불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무조건 누리고 보는 게 좋다. 내 돈 나가는 게 아니니 가성비 따질 이유도 없다. 비용과 혜택이 직접 연결되지 않은 탓에 공짜 점심인 양 착시를 일으킨다는 것이 정부를 시장보다 비효율적이게 하는 근본 이유다.

개별 사업의 비용 지불과 편익 수혜가 1 대 1로 매칭되는 대신 뭉뚱그려 총지출을 세금으로 충당하면, 확실히 개별 정책의 결정과 실행에서는 비용에 덜 신경 쓸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어쨌든 총지출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라는 제약마저 없다면?

‘트릴레마’라는 단어가 있다. 딜레마가 둘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하듯, 트릴레마는 셋 사이에서 둘만 택해야 할 때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정부 정책 결정에서도 종종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정부 재정에서 트릴레마는 ‘큰 지출, 작은 세금, 적은 채무’라는 셋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는 잘해야 둘만 달성할 수 있으니,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정치가와 관료들은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하겠지만 현실의 재정 운용에서는 취사선택에 그다지 심사숙고하지 않는다. 정책 결정자가 피부로 느끼는 셋의 중요도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큰 지출과 작은 세금은 현재 국민에게 좋은 것이지만, 적은 채무는 미래 국민에게 좋은 것이다. 과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겠는가.

자식 세대에게 빚 떠넘길 텐가

전 국민에게 25만원어치 상품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별도의 재원 대책은 마련하지 않으니 채무만 늘어난다. 법인세와 상속세를 감면할 수 있다. 하지만 쓸 데는 계속 늘어나는데 들어오는 세금마저 줄이니 역시 채무만 늘어난다. 낸 것보다 많이 받는 국민연금 구조를 뜯어고치는 게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계속 커지지만, 여전히 변죽만 울린 채 그대로다. 덕분에 대규모 재정적자는 만성이 되어, 202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의 적자만 더해도 500조원이 넘는다(그나마 하루하루 급속히 불어나는 연금부채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쯤 되면 셋 중 선택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트릴레마가 아니다. 그냥 현세대는 공짜로 호화로운 점심을 즐기고, 청구서는 뒷세대에게 넘기는 셈이다. 예전부터 의아한 게 있었다. 대한민국처럼 자기 자식을 끔찍이 위하는 부모들은 달리 찾기 어렵다. 그런데 어찌 사회 전체로는 자식 세대에게 빚 떠넘기는 데 이다지도 거리낌이 없을까.

사족) 그렇다면 해결책이 뭐냐고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첨언하자.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은 동일하다.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으니, 아예 미래세대 부담은 일정 규모 이하로 묶어 놓은 다음, 재정지출과 세금규모를 놓고 고민하게 하는 것, 트릴레마 상황을 딜레마 상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김태일|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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