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발목들을 향해 건넨 말
믿기지 않겠지만 2021년 12월에 시작된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년의 평일 아침을 단 한번도 쉰 적이 없다. 처음에는 출근길 지하철에 집단 탑승을 시도했고, 무정차 통과 조치가 시행된 뒤부터는 승강장에서 구호만 외쳤다. 그것까지 금지되자 침묵한 채 피켓만 들었고, 침묵조차 불허인 지금은 승강장에 들어갔다가 끌려 나오는 일만을 반복하고 있다.
언론도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더 이상 보도하지 않는다. 대개 구경꾼들은 심각한 것이 아니라 화끈한 것을 원한다. 언론도 그렇다. 자신의 사명에 어떤 꽃단장을 하든, 언론이 최고로 바라는 것은 피이고, 그게 어렵다면 머리채를 잡아야 하고, 최소한 욕설이라도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면 보도 가치가 생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했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언론에 관한 뒤집힌 명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국이 장애인들에게 승강장을 원천봉쇄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대로 두고 갈등만 봉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이 없으면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다.
승강장 원천봉쇄로 갈등을 ‘봉쇄’
언론도 출근길 지하철 행동 외면
막힌 장애인들 ‘포체투지’ 나서
이들을 지켜보는 승객은 없어
누군가 손잡고 응답해 줬으면
이제 지하철은 장애인들 없이 정상운행 중이고 시민들도 예전처럼 장애인을 출근길에 만날 일이 없다. 공감을 얻으려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불편이 사라지자 돌아온 건 무감한 일상이다. 공감은커녕 반감조차 없는 무감한 일상. 네 고통은 있다지만 내 불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이 빤한 술수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역부족이었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들이 달려들어 끌어내는데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100일간의 ‘포체투지(匍體投地)’다.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면 한 명이라도 탑승해 목소리를 내보겠다는 것, 시민들의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없다면 발목을 향해서라도 말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포체투지는 두 무릎과 두 팔, 머리까지 땅에 대고 절을 하는 불교의 오체투지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나 말만 따온 것이고 실제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객실 바닥을 포복하듯 기어가고(그래서 ‘포체’라고 부른다), 그것조차 불가능할 때는 바닥에 누워 객실 천장을 보며 말을 한다. 이런 시위를 지금 50일 넘게 이어가고 있다.
사실 장애인들의 포체투지에는 승려들의 오체투지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입혀져 있다. 비장애인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기어갈 때 장애인들은 칼보다 날카롭게 찌르고 바위보다 무겁게 짓누르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도 생존을 위해 비장애인들 앞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들이 많았다. 포체투지는 이 동일한 몸짓을 구걸이 아닌 저항의 언어로 바꾸어놓는다. 투지(投地)에 투지(鬪志)를 담은 것이다. “저희는 시민불복종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를 시민으로 여겨주지도 않는 이 사회에 저항하는 중입니다.”
포체투지가 가능한 시간은 지하철 보안관들이 들이닥치기까지 기껏해야 10여분이다.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려 객실 바닥에 앉으면 객실이 잠시 술렁인다. 그러고는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갑자기 변화된 공기를 감지하는 촉수 하나를 쫑긋 세워둔 채 모두가 가만히 있다.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을 지켜보는 승객은 없다. 그러나 누군가 지금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승객도 없다. “시민 여러분, 저희도 시민입니다.” 그저 스마트폰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승객도 없다. 모두가 모른 척하면서 모두가 안다는 것을 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승객들은 때에 맞춰 발꿈치를 옮겨 길을 내주고 장애인은 그 좁은 길을 노를 젓듯 팔꿈치로 기어간다. 그는 자신의 요구를 담은 종이를 승객들에게 전하지 못한 채 객실 바닥에 붙이고 승객들의 얼굴이 아닌 발목들을 향해 말을 한다. 승객들은 발목들 뒤에 숨어서 그를 보지 않은 척 보고 듣지 않는 척 듣는다.
아,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면 좋겠는데, 그리고 승객 중 누군가 돌아앉아 손을 잡고는 응답을 해주면 좋겠는데, 갑자기 한 인물이 부하직원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쳐 공무를 집행해버린다. “열차 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시위 집회는 금지입니다.” 그러고는 허가받지 않은 “시민 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입니다”라는 말을 객차 바깥으로 끌어내버린다.
고병권|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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