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대통령님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태극기의 반성
우리는 태극기세력입니다. 고백건대 윤석열 대통령님을 오랫동안 가짜 보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는 등 보수진영을 초토화시킨 대통령님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부딪친 것은 약속대련으로 봤습니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와 결별한 것으로 꾸미고 국민의힘에 위장취업해 보수의 남은 뿌리마저 뽑으려 한다는 것이 우리 쪽 다수의 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말씀과 인사 등을 보면서 대통령님이야말로 진정한 태극기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사실 총선 때도 대통령님을 의심했습니다. 태극기 독자세력화 차원에서 신당도 만들어봤습니다. 대통령님이 총선 참패 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많은 태극기들이 등을 돌리려 했습니다. 좌파세력과 국정을 논하다니요. 그러나 대통령님이 즉각 야당에 대한 헛된 기대를 접고 국정을 제 궤도로 돌려놓으려는 여러 시도를 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대통령님이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우리 편”이라며 무릎을 쳤답니다. 죽마고우의 아버지이자, 멘토였다는 이종찬 광복회장은 “용산에 밀정이 있다”고 비판하고,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도 불참했지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사사로운 정마저 끊어내려는 결단을 평가합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발탁도 ‘신의 한 수’입니다. 야당은 막말을 일삼았다고 비판하지만 김 후보자의 주옥같은 어록 중 틀린 말이 있던가요. 좌파방송 MBC 정상화에는 이진숙 위원장만 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노래주점과 골프장에서 법인카드를 남발한 막무가내 정신이야말로 종북좌파 방송인들을 뿌리 뽑는 데 꼭 필요한 자질 아니겠습니까.
대통령님이 광복절을 맞아 단행한 사면·복권을 보고도 진심을 느꼈습니다. 일각에선 친문재인계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을 비판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핵심은 국정농단 관계자들 거의 모두가 면죄부를 받은 것이지요. 태극기로 개심한 대통령님에게 국정농단 수사를 주도했다는 꼬리표는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대통령님이 잡아넣었던 인사들을 모두 풀어주는 무리수를 둔 것 자체가 태극기에 보내는 러브레터 아닐까요. 김경수 복권은 물타기이자, 야권 분열을 노린 곁가지였을 뿐이죠.
이런 식의 막무가내 인사와 사면·복권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도 엄두를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태극기를 향해 직진하시는 대통령님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때나마 대통령님을 의심했던 우리의 짧은 안목, 얕은 인내심도 반성합니다.
대통령님에게도 태극기가 필요합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대통령님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가 2배가 넘은 지 아주 오래됐습니다. 모 평론가는 대통령님의 “반국가세력 암약” 발언을 두고 “현실을 떠나 가신들을 데리고 극우 판타지의 세계로 집단이주한 것 같다”고 했지요. 야속하고 불쾌하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도 이렇습니다. 대통령님이 성공한 대통령을 아직도 꿈꾸고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판타지가 있을까요.
그러니 우리라도 믿으세요. 대통령님 앞날에 대해 흉흉한 말들이 많습니다만 굳건한 20%를 가진 우리가 대통령님의 침대축구, 방탄에 몰빵한 국정, 극우 판타지 세계관을 응원하겠습니다.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가 떠오르는군요. “살려는 드릴게.”
다만 좀 더 성의를 보여주세요. 더 많은 태극기 인사를 요직에 기용해주십시오.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신 “검은 선동세력”에 대한 이념전쟁을 선포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국정, 기성 언론에 삼겹살이 아니라 꽃등심을 구워줘도 좋은 기사가 나올 리 없습니다. 대통령님이 즐겨 보신다는 극우 유튜버들을 용산에 초청해 오찬이나 만찬을 갖는 게 가성비 측면에서 낫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님이 태극기 집회를 찾는다면 이보다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험한 여론에 마음껏 하지 못했던 어퍼컷 세리머니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태극기의 환호로 대통령님의 축 처진 어깨를 펴드리겠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광화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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