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X파일] "北 공작원 리호남, 필리핀에 없었다" 결정적 증거 공개
① '이재명 방북비=쌍방울이 300만불 대납' 검찰 수사 내용 뒤집는 새로운 증거와 증언들
② 첫 방북비 전달 장소로 지목된 필리핀 마닐라 호텔...당시 쌍방울이 촬영한 비공개 영상
③ 필리핀 행사 총괄한 김모 대표 "단언컨대 리호남은 안 왔고, 검찰에도 자세히 설명했다"
④ 필리핀 언론인협회의 대회 초청장 입수...비자 발급용 1억 짜리 초청장에도 리호남은 없었다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대북송금' 사건은 쌍방울 김성태 회장이 북한에 건넨 800만 달러의 목적이 핵심 쟁점이다. 검찰은 김 회장이 경기도가 북한에 약속한 스마트팜 비용(500만)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300만)을 대신 내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의 자체적인 대북 사업 비용 혹은 북한과 주가 조작을 모의하고 대가를 건넨 것이라고 맞선다.
지난 6월, 1심 법원은 검찰에 손을 들어줬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징역 9년 6월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이재명 대표는 이화영 유죄 판결을 근거로 뒤늦게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이재명 방북 비용과 관련해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했다. 검찰 수사 결과는 2019년 5월, 쌍방울 김성태 회장이 북한 공작원 리호남을 만나 이재명 방북 비용을 300만 달러로 합의했고,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나눠서 지불했다는 내용이다. 첫 번째 지불(70만불)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증거와 증언을 종합하면 리호남은 당시 필리핀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돈을 줬다는 복수의 진술만 있을 뿐, 돈을 받은 사람은 정작 현장에 없었다면 검찰의 수사 결과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증거① 쌍방울-북한 필리핀 비공개 만찬 영상 입수
2019년 7월,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은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제2차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이하 대회)'를 열었다. 경기도와 쌍방울이 후원했다. 경기도를 대표해서 이화영 전 부지사가, 쌍방울그룹은 김성태 회장을 비롯한 핵심 임원들 다수가 참석했다.
검찰은 이 행사 기간 중에 김성태 회장이 북한 공작원 리호남을 만나 이재명 방북 비용 중 7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는 리호남, 송명철(이상 북측), 김성태, 안부수, 방용철(쌍방울 부회장), 이화영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화영 전 부지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1심 법원은 김성태, 안부수, 방용철 등 3인방의 진술이 이화영의 진술보다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쌍방울 비밀 만찬 동영상에는 '이재명의 방북'과 관련된 대화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쌍방울 측은 공식 행사를 마친 후 북측 인사 6명과 호텔에서 비공개 만찬을 열면서 이를 촬영했다. 안부수 회장은 북측 인사 6명의 이름과 소속을 일일이 거명했고, 김성태 회장은 스스로 "술에 취했다"면서 "김성혜 실장(통일전선부)과 박철 부위원장과 약속한 게 있다.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북측 인사들은 상당히 소극적이었고,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날 쌍방울 촬영 영상 어디에도 북한 공작원 리호남은 등장하지 않는다.
증거② 필리핀 행사 총괄 “단언컨대 리호남 안 왔다”
검찰은 이날 비공개 만찬이 끝나고 리호남과 김성태 등이 호텔방에서 따로 만났다고 주장한다. 뉴스타파는 당시 필리핀 행사를 총괄한 대행사의 김모 대표에게 그런 사실이 있는지 물어봤다. 김 대표는 안부수 회장의 최측근으로 아태협의 대북 사업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필리핀 행사 직후에는 아태협 본부장으로 영입됐다.
김 대표는 여러 차례에 걸친 통화에서 "리호남은 필리핀에 오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그렇게 단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했다. 다음은 기자와 김 대표의 통화 내용이다.
○ 기자 : 김성태의 진술은 마닐라에서 송명철, 리호남, 이화영 그리고 본인이 이렇게 같이 있었다는 거예요. 방용철(쌍방울 부회장)까지 호텔에서.
● 김 대표 : 아니에요. 그건 맞는데 한 사람만 빠졌고, 한 사람이 들어갔지. 빠진 게 이제 리호남이 빠지고 거기에 배상윤(필룩스 회장)이 들어갔죠.
○ 기자 : 그게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며칠째? 당일 저녁 만찬 이런 건가요?
● 김 대표 : 예. 행사 끝나고 만찬 때.
○ 기자 : 이화영이 같이 있었어요? 그러면?
● 김 대표 : 없었어요.
○ 기자 : 이화영 부지사는 있지도 않았어요?
● 김 대표 : 네, 없었어요. 그때.
○ 기자 : 리호남이 밤에 만찬 끝나고 몰래 들어와가지고, 이렇게 만났을 가능성은 있을까요?
● 김 대표 : 제가 크로스 체크를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이제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 전 시간은 저희 직원이 계속 붙어가지고 의전을 했고, 그다음에 그(안부수) 방에서는 또 정ㅇㅇ이 같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두 사람 다 확실하게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단정을 하는 거예요. 제가 몇 번 크로스 체크를 했거든요.
○ 기자 : 리호남을 만난 적 있냐? 보거나?
● 김 대표 : (정ㅇㅇ한테) 물어봤었어요. 혹시 이 고문(리호남) 왔냐고 왜냐하면 이 고문(리호남)을 저기 그때 저기서 정ㅇㅇ도 봤거든요. 중국에서 (안부수와) 같이 들어갔을 때. 그랬기 때문에 (정ㅇㅇ)이 (리호남) 얼굴을 알아요. 근데 아니 못 봤다고. 그리고 저희 직원도 똑같은 얘기고. 안 왔다고 못 봤다고. 근데 이제 혹시라도 이제 여권 위조해갖고 들어올 수도 있지 않나라는 것 때문에 물어보고 확인을 해봤는데 안 왔다는 게 확실해요. 필리핀.
- 봉지욱 기자-김모 대표(필리핀 대회 총괄) 전화 인터뷰 중
"리호남 필리핀에 안 왔다"는 행사 총괄 담당의 진술 누락한 검찰
김 대표는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서 7차례 가량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리호남은 필리핀에 오지 않았다"고 검사에게 말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검사가 "리호남이 필리핀에 오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기억에는 전혀 없지만 "혹시 몰라 직원들에게도 여러 번 묻고 교차로 확인"해서 답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리호남 필리핀 방문'과 관련된 검사의 질문은 한 차례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확보한 김 대표의 7개 진술조서에는 '필리핀과 리호남' 관련 내용은 빠져 있었다. 검사가 일부러 조서에 관련 진술을 적지 않았는지, 아니면 해당 날짜의 조서 전체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 김 대표 : 아니 근데 그때도 그저께인가도 얘기했지만 리호남 안 왔다고요. 오지를 않았어요.
○ 기자 : 그럼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나요?
● 김 대표 : 필리핀 대회 때는 (리호남이) 오지를 않았어요. 올 수가 없었고. 제가 이제 한 세 가지로 크로스 체크했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어서. 처음에 검찰에서 그 얘기를 하길래. 예? 리호남이 왔다고요? 안 왔다 그랬더니. 어떻게 안 오냐라고 얘기를 하셔서 그때 배경 설명을 해드렸고요.
- 봉지욱 기자-김모 대표(필리핀 대회 총괄) 전화 인터뷰 중
증거③ "리호남의 필리핀 비자 발급은 불가능했다”
검찰은 북한 공작원 리호남이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은 필리핀에 어떻게 입국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최근 민주당에서 리호남이 필리핀에 가지 않았는데 검찰이 조작했다고 주장하자, 검찰은 리호남이 위조 여권으로 필리핀에 입국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리호남이 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보라는 식으로 반박했다. 범죄를 입증해야 할 검찰이 피고인 측에게 입증 책임을 돌린 것이다.
리호남의 필리핀 입국 여부를 따지려면, 위조 여권을 사용했더라도 어떻게 미수교국의 비자를 받았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아태협이 공식 초청한 북측 인사 6명도 처음엔 필리핀 정부가 비자 발급을 거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안부수 회장은 필리핀 한인 사업가 이모 회장을 통해 필리핀 언론인협회(이하 협회) 회장을 소개받았다.
이후 안 회장은 대회를 필리핀 언론인협회와의 공동 주최로 바꾼다. 모두 비자 발급을 위해 벌어진 일이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필리핀 협회의 공식 초정장에는 북한 인사 6명의 이름과 직책이 쓰여 있었다. 여기에도 리호남이란 이름은 없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대기하던 북측 인사 6명은 행사 하루 전에야 겨우 필리핀 입국 비자를 받았다. 안부수 회장은 초청장에 대한 대가로 협회에 1억 원이 넘는 돈을 건넸다고 한다.
뉴스타파는 안부수 회장과 필리핀 언론인협회를 이어준 이모 회장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주 필리핀) 일본 대사관측에서 되게 민감하게 필리핀 외교부 쪽으로 방해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면서 "필리핀 방송인들이 좀 노력을 해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초청장에 적힌 북측 인사 6명 외에 추가로 비자를 발급해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설사 리호남이 위조 여권을 썼다고 하더라도, 비자 발급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북한 공작원이 70만 달러 받으러 필리핀행? "중국에서 받으면 되는데, 상식 벗어나"
북한 공작원의 필리핀 잠입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필리핀 대회를 총괄한 김 대표는 당시 북측 인사 6명은 북경 호텔에서 필리핀 비자 발급을 기다렸고, 돌아가서도 북경에서 이틀을 더 머물게 돼 있었다면서 중국에서 돈을 받으면 더 편할 텐데, 왜 리호남이 굳이 힘들게 필리핀을 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아태협이 북경의 호텔 숙박비와 항공 요금 일체를 지불했다고 한다.
더구나 2019년 7월은 쌍방울 측이 중국 심양과 단둥에서 리호남을 비롯한 북측 인사들을 수시로 만날 때였다. 방용철 부회장은 아예 중국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국정원 문건에는 그 당시 쌍방울이 유엔 제재 품목인 최고급 말 안장 등 사치품을 북측에 건넨 사실이 적혀 있다.
70만 달러를 받은 리호남이 이 돈을 필리핀에서 어떻게 갖고 나갔을지도 의문이다. 만약 북한 대사관이 필리핀에 있었다면, 외교 행낭에 넣어서 빼돌릴 수 있지만 제 아무리 베테랑 공작원이라도 요즘 공항의 검문 검색을 쉽사리 통과할 수는 없다. 발각될 경우, 외교적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증거와 증언은 '필리핀으로 간 리호남'이 존재하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향후 리호남이 필리핀에 가지 않은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다면, 검찰의 이재명 방북 비용 대납 수사 결과는 뿌리째 뒤집힐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화영 전 부지사의 항소심과 이재명 대표의 대북송금 1심 재판에서도 '필리핀의 유령, 리호남'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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