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인’ 정신병원 신체 강박이 “고난도 치료법”이라는 신경정신의학회

고경태 기자 2024. 8. 2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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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입장문에 “성찰 없는 궤변 ”비판
5월24일 밤 11시30분 처음으로 세 명의 남자 보호사들에 둘러싸여 손과 발, 가슴을 묶이는 5포인트 강박을 당하는 피해자 박씨. 약에 취했는지 전혀 반응하지 않고 반듯하게 누워있다. CCTV 영상 갈무리

최근 잇따라 드러난 정신병원 격리·강박에 따른 사망사고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회장 김용구)가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신장애인 강압적 치료행위를 과학적 처치로 포장한 듯한 내용까지 담겨 당사자 단체들의 비판이 이어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회원으로 둔 국내 학술단체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9일 학회 안용민 이사장 명의로 입장문을 냈다. 이 입장문에서 학회는 “사고와 관련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재발방지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자 한다”며 “전문가로서, ‘비자발적 치료라는 특수한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 및 치료진 모두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만들기 위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 정부, 국회 및 당사자 단체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 입장문이 정확히 어떤 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학회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함께 한겨레에 ‘익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터뷰가 포함된 부천 모 정신병원 사망사고 보도에 대한 질의와 요청’을 보낸 것을 보면, 입장문 역시 해당 병원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겨레는 지난 5월 33살 여성 박아무개씨가 부천더블유(W)진병원에 입원했다가 복통을 호소했음에도 적절한 구호조처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격리·강박을 당했다가 17일 만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 강아무개 정신과 전문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에게 투여된 약이 부작용 위험에도 과도하게 처방됐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입장문에서 “일부 사례의 과도한 일반화와 자극적 언어를 사용한 표면적 보도”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사망사고에 대해 “불가피하게 치료를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고도 했다. 신체를 억제하고 구속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동반된 흥분과 공격 행동과 같은 급성기 중증 증상을 가진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한 고난도의 치료 방법”이라 했고, “건강보험의 지원 부족으로 인한 급성기 병상 감소에 따른 입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정신병원의 낮은 수가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22일 “국가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자기성찰은 없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강압적 행위는 치료행위가 아님에도 치료기술이라면서 과학적이라는 궤변을 주장하고 있다. 강박이 된 상태에서 과도한 약물투약은 고문 행위임을 이미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에서 수없이 경고하고 권고하였는데도,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태도만이 읽힌다”고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함께 부천더블유진병원 약물투여를 다룬 한겨레 기사에 대한 질의요청서에서 “코끼리주사는 전문의들에게조차 생경한 용어”라며 “정신의학 약물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악의적 목적으로 기술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취재원인 익명의 정신과 의사가 실재 인물인지 의심스럽다고 했고, 부천더블유진병원 사망 환자에 쓴 약물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공단에서 허용한 성인 허용량의 절반 이하라고 했다.

9일 오전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29개 정신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부천시 원미구 부천더블유(W)진 병원 앞에서 환자를 침대에 강박하는 행위극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에 대해 경기동료지원센터(정신질환자 지원 단체)를 운영하는 경기우리도의 이한결 이사장은 “코끼리마저 잠재울 수 있다는 비유적 표현인 ‘코끼리 주사’는 이미 2010년대부터 당사자들의 구술에 의해 개념화되어 사용되어왔다. 정신의료기관 종사자는 통증 주사, 안정제 등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실제 주사를 맞는 사람들은 이를 코끼리주사로 통칭하여 부르고 있다”며 “기자의 단순한 주관적 표현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일상용어이고, 현상을 반영하는 개념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이사장은 약물투여와 관련해서는 “약물의 작용과 부작용은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허용치를 정하였다고 하나 개별 약물 간의 상호작용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해당 약물로 인하여 당사자가 불편감을 호소한다면 그것은 허용량과 무관하게 그 사람에게는 과잉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인터뷰에 응했던 강아무개 전문의도 “(부천더블유진병원은) 환자의 컨디션을 살피면서 용량을 조절했어야 한다. 처음 용량이 거의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한 관계자는 22일 학회 입장문과 질의요청서가 작성된 과정에 대한 한겨레의 질문에 “입장문은 이사회 논의를 거친 것으로 알고, 한겨레에 대한 질의요청서는 회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던 뒤 이를 학회와 의사회의 홍보위원회에서 검토 취합하여 정리한 뒤 만들었다”고 말했다. 입원했던 피해자가 어떤 상태였는지 병원 쪽의 처치와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왜 검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당사자 단체와도 공식·비공식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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