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살릴 책임, 금리에 떠넘긴 대통령실...‘짠물예산’ 짜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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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 민간 경제분석기관은 물론 정부와 한국은행까지 공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부가 내수 부진 극복의 책임을 한은에 돌리는 듯한 입장을 공개 표명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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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 민간 경제분석기관은 물론 정부와 한국은행까지 공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부가 내수 부진 극복의 책임을 한은에 돌리는 듯한 입장을 공개 표명한 데 있다. 한은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핵심 존재 이유로 두는 기관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통화정책에 대해 개입성 발언을 한 건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2025년 예산안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22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나온 직후 “금리 (동결) 결정은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는 공개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추석 민생대책 발표 등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데 금리가 인하됐더라면 더 조화스러웠을 것”이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통상 정부는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해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자칫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대통령실의 행보가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실이 노골적으로 한은에 불만을 드러낸 것은 심화하고 있는 ‘내수 부진’의 책임을 통화정책 쪽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한은은 이날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석달 전 전망치(2.5%)보다 0.1%포인트 낮춘 2.4%로 수정 발표했다. 내수 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은은 석달 전과 견줘, 민간소비(1.8%→1.4%)와 설비투자(3.5%→0.2%) 전망을 크게 내려 잡았다. 건설투자(-2.0%→-0.8%)만 위축 강도가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을 뿐이다. 한은은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내수 회복 모멘텀이 약한데다 폭염 등 일시적 요인도 작용하며 취업자 수 증가가 5월 이후 예상보다 둔화됐다”고 했다.
이런 진단은 이달 초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시각과 엇비슷하다. 이 연구원도 올해 성장률 전망을 0.1%포인트(2.6%→2.5%) 내려 잡은 이유로 내수 부진을 콕 집은 바 있다. 민간 경제분석기관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박상현 아이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겨레에 “수출이 좋아진 업종도 반도체·자동차 중심으로 제한적이고, 나머지 업종은 회복되지 않아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취약하다”고 말했다.
집값·가계빚 불안 등을 염두에 두면 통화정책으로 내수 부양에 대응하는 건 위험이 뒤따른다. 내수를 부양하려다 금융 안정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반면 재정정책은 경제주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주는 통화정책과 달리 특정 취약 부분을 겨냥해 마중물을 부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전문가들이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2025년 예산안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날 대통령실의 이례적 입장 표명은 내년 예산안이 시장 기대보다 더 긴축적으로 편성됐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경상성장률 전망(4.5%·정부 예측)을 크게 밑도는 예산 증가율을 토대로 정부가 예산안을 짠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긴축 예산은 물가 안정과 재정 건전성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내수 부진이 문제인 상황에선 즉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들을 겨냥한 맞춤형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통화정책은 그보다 넓고 큰 수단”이라며 “정부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건전 재정 원칙만 강조하다 보니 ‘모든 문제의 원인은 금리’라는 식으로 한은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영무 엘지(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가 재정 여력이 없거나, (지출을 크게 늘릴) 상황이 안 되니 통화정책으로 (여론의) 눈을 돌리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박수지 suji@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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