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불안에 4분기로 밀린 금리 인하… “소수의견 없어도 10월 단행”
만장일치 결정… ‘3개월 내 인하’ 2명→4명
소매판매 등 내수부진… “10월 인하 가능”
“韓 금리 인하, 연내 한 차례 그칠것” 의견도
한국은행이 8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만장일치 동결하면서 긴축 기조를 이어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기대감이 높아지고,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등 금리 인하 여건은 조성됐지만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아 정책 결정을 늦춘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다음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열리는 10월을 주시하고 있다. 비록 ‘소수의견’ 없는 동결 결정이었지만,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를 통해 제시된 금통위원들의 전망에서 ‘금리 인하가 임박했다’는 신호가 읽혔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 기준금리 1년 6개월째 동결… ‘인하 소수의견’ 또 없었다
한국은행 금통위는 22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2·4·5·7·8·10·11월과 올해 1·2·4·5·7월에 이어 이번까지 13번 연속 금리를 유지한 것이다. 이번 회의가 3분기 중 열리는 마지막 금통위인 만큼 금리 인하 시점은 4분기로 밀리게 됐다.
이날 금통위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동결 전망이 우세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2%대 중반(2.6%)을 기록하면서 물가 안정 목표(2%)를 향해 가고 있지만, 수도권 집값 상승 등으로 금융 불안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조선비즈가 국내 증권사 거시경제·채권 전문가 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8명은 동결을 예상했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는 적어도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소수의견은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다음 금통위가 열리는 10월에 금리를 인하하려면 이번 회의에서 소수의견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 것이다. 통상 첫 소수의견이 등장한 뒤 열린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린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인하 소수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동결을 결정하면서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금통위원들은 한은이 과도한 유동성 공급해서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부추기는 통화정책을 운용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7월 금통위와 비교해 통화정책방향 결정문(통방문)의 기류는 사뭇 달라졌다. ‘충분히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표현에서 ‘충분히’가 빠졌고, 전에 없던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물가상승률에 대해서는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좀 더 커졌다’면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 진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을 대상으로 향후 기준금리 전망을 취합하는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에서도 금리 인하를 점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금통위에서는 3개월 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위원이 4명 등장했다. 석 달 내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 금통위 위원들의 수는 1명(5월)→2명(7월)→4명(8월)으로 늘었다.
이날 공개된 수정 경제전망도 금리 인하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음을 보여줬다. 한은은 올해 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전망을 2.6%에서 2.5%로 내렸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종전(5월) 2.5%에서 2.4%로 낮췄다. 물가가 안정화된 가운데 내수 부진으로 경기부양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긴축 기조를 유지할 명분이 약해졌다.
◇ “금리인하 ‘목전’… 소수의견 없었어도 10월 단행 가능”
이번 금통위를 지켜본 시장에선 한은이 10월 금리 인하를 단행할 힌트가 충분히 나왔다고 평가했다. 비록 소수의견 없이 만장일치 ‘동결’을 결정했지만,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 금리 인하의 명분이 예상보다 뚜렷하게 제시됐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인하 단행 직전 ‘소수의견’이 제시되던 패러다임이 이제는 바뀌었다는 시각이 제시된다. 이창용 총재 임기 들어 새로 도입된 포워드 가이던스가 소수의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과거에는 소수의견을 가지고 시장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며 “금통위원들이 꼭 소수의견이 아니라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서도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3개월 내 연 3.25%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위원이 2명에서 4명으로 증가했다”며 “지난달 (통화정책 전환의) ‘깜빡이’를 켠 이후로 금리 인하 시점이 다가왔음을 시사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다음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있는 10월을 주목했다. 안 연구원은 “소매 판매 위축 등 내수 부진을 고려하면 10월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잭슨홀 미팅과 9월 미국의 고용 보고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이벤트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다음 회의에서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통위의 동결 결정은 부동산·가계부채 등 금융 안정에 포커스를 뒀으나, 향후 물가나 경기 환경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의 요건이 갖춰짐도 언급해 이전보다 비둘기파적(dovish·통화 완화 선호)인 경향이 강화된 것으로 평가된다”며 “소수의견보다는 포워드 가이던스에 주안점을 두고 봤을 때 10월 인하 가능성이 유효하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다만 인하가 시작되더라도 그 속도는 점진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류진이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제어되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내수 경기 부양보다는 금융 안정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며 “연내 인하는 결국 한차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금리 인하 기대에 더욱 무게가 실리면서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3bp(1bp=0.01%포인트) 내린 연 2.907%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2.7bp, 1.7bp 내린 연 2.933%, 연 2.980%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전날보다 1.9원 내린 1334.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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