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금리 먼저 내렸다...美와 ‘헤어질 결심’ 이끈 이 남자
티프 매클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고성장, 고물가 美 경제, 캐나다와 달라
무엇이 경제에 도움될지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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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의 총대를 멘 건 의외의 나라였다. 미국 경제와 고도의 통합을 이루고 있다는 나라, 미국과 국경선을 맞대 지리적 인접성은 물론 긴밀한 무역관계, 유사한 사회문화 구조 등 미국과 밀접한 캐나다가 미국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린 것이다. 지난 6월 초 캐나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5%에서 4.75%로 0.25%포인트 떨어뜨렸다. 파이낸셜타임스나 로이터 등 해외 주요 매체는 “캐나다가 G7(7국) 중 최초로 금리 인하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캐나다는 지난달 24일에도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여전히 고금리(연 5.25~5.5%)를 고수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와중에 미국 경제와 가장 긴밀하게 밀착해 있는 캐나다의 ‘헤어질 결심’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WEEKLY BIZ는 이 ‘헤어질 결심’을 실행에 옮긴 주인공, 티프 매클럼(Macklem)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인터뷰했다. 그는 “원래 비슷한 사이클을 보여왔던 캐나다·미국 양국 경제가 지난해부터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었다”며 “미국은 캐나다보다 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고, 미국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더 끈적끈적했다는 특징이 있었다”고 했다. 고성장·고물가인 미국은 과열된 경제를 식히기 위해 고금리를 더 끌고 갈 필요가 있었으나, 캐나다는 상황이 달랐으니 먼저 금리를 내렸다는 뜻이다. 매클럼 총재의 ‘용기’는 그의 원칙론에도 드러났다. 그는 “통화정책의 주된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낮게, 안정적으로, 예측가능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라며 “환율이나 자산 가격,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불길을 잡기 위한 전 세계 각국의 고금리 정책 끝에 캐나다 중앙은행의 승전보(금리 인하)는 그 의미가 크다. 캐나다는 좁은 의미의 선진국 그룹인 G7 중에서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8만1600달러)에 이어 2위(5 만3500달러)다. 더구나 캐나다 중앙은행은 해외로 총재를 ‘수출’한 적이 있을 정도로 통화정책에서 신뢰받는 기관이란 평가다. (캐나다 중앙은행을 이끌었던 마크 카니 전 총재는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로 일했다.) 매클럼 총재는 코로나 사태 초입인 2020년 6월부터 캐나다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딴 그는 1984년부터 캐나다 중앙은행에서 근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잠시 캐나다 재무부 차관보로 근무하다가 2010년 복귀했다. 위기 때마다 캐나다 경제를 책임져왔던 ‘특급 소방수’란 평이다.
◇”加·美 경제, 지난해부터 다른 길”
캐나다는 사실 다른 나라보다 더 미국의 통화정책을 의식해야 하는 처지다. 캐나다 중앙은행의 ‘7월 통화정책 보고서’를 보면 3페이지부터 ‘미국 성장의 둔화’란 구절이 나온다. 자국 경제를 평가하는 보고서 초반부터 미국 얘기를 꺼낼 정도로 캐나다의 대(對)미국 교역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캐나다 전체 수출의 77.6%는 미국으로 향했다.
-현실적으로 캐나다가 미국의 통화정책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미국 경제에서 어떤 일이 터지면 캐나다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양국 경제는 긴밀하게 엮여 있다. 일반적으로 양국 경제는 비슷한 경기 사이클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두 나라 경제 상황에 중대한 차이가 생길 때도 있다. (내가 판단하기로) 지난해부터는 특히 그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예컨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캐나다에 비해 높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은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양국의 통화정책 사이 다른 처방이 필요했던 이유다.”
-캐나다 경제도 교역 의존도가 높아 환율 변동에도 신경 쓰였을 것 같다.
“캐나다 경제도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경제 구조라 할 수 있다. 이에 글로벌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늘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교역 상대인 미국의 동향도 물론 긴밀하게 살핀다.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도 캐나다 달러의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을 충분히 고려한다. 하지만 환율은 (물가처럼) 목표치를 두고 있지 않다.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상황에서 (환율 변동이 불가피한 만큼) 통화정책을 결정할 땐 무엇이 캐나다 경제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에만 집중해 결정한다.”
◇”자산 가격이나 금융 안정보다 중요한 건 물가”
매클럼 총재의 ‘헤어질 결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에 금리를 떨어뜨렸을 때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불길을 잡으려고 금리를 올린 것도 미국보다 빨랐다. 캐나다는 2022년 물가 전쟁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 인상하는 ‘극약 처방’을 내릴 때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보다 구체적인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설명해달라.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역시 코로나 사태 이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우리는 매우 민첩하고, 강력하게 대응했다. 기준금리를 (약 1년 4개월 만에) 연 0.25%에서 5%로 올렸다. 우리가 입안한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렸다. 2022년 6월 8.1%까치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이 지난 7월에는 2.5%까지 내려왔다. 통화정책이 전방적인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중앙은행 차원의 물가 목표치인 2% 상승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기준금리를 연 4.5%까지 두 차례 낮춘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가을에는 더 떨어지고, 내년에는 2% 근방에서 안정화할 것으로 본다.”
-추가 금리 인하 방침은.
“캐나다 경제가 우리가 예측한 대로 흘러간다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점차 더 해소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우리는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요인과 끌어올리는 요인은 서로 밀고 당기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캐나다에선 가계 수요의 완만한 감소, 조금 더 느슨해진 노동 시장 상황 덕분에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는 추세다. 반면 주택 가격과 일부 서비스 분야의 가격 인상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상반된 요인의 대치 속에서 물가상승률이 서서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중동 갈등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건 인플레이션 전망에 (전망을 빗나가게 만들) 리스크 요인이다. 앞으로 나오는 경제 데이터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플레이션의 ‘예상 경로’를 예측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 시점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물가 외에 다른 고려 요인은 없나.
“(기준금리 결정 앞에 앞서) 우리는 통화정책이 자산 가격과 금융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한다. 미국 달러 대비 캐나다 달러의 환율도 염두에 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목표치인 2% 이내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캐나다인들의 경제·금융 복리를 위한 최적의 통화정책이라고 믿는다.”
◇”이민으로 노동력은 증대했으나, 생산성·혁신 부족”
-캐나다는 이민 국가다. 이민정책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지난 몇 년 동안 캐나다로 유입된 외국인(이민자나 일시 체류자) 덕분에 인구는 크게 늘고 있다. 올해에도 3%가량 늘 것으로 예상한다. 인구 증가는 경제에서 수요와 공급이 모두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 이민자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해준다. 하지만 최근엔 캐나다를 찾는 이민자나 외국인들의 신규 고용이 서서히 둔화 중이다. 이들이 일자리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이민자 유입에 따른 상품·서비스 수요 증가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시장에서 잘 흡수되고 있는데, 주택 시장의 공급은 신규 수요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민자의 수요가) 주택 가격과 임대료를 끌어올리고 있다.”
-캐나다 경제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캐나다는 지난 25년 동안 (이민 등으로) 근로자의 수를 늘려오면서 경제 성장에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근로자 1인당 노동 생산성 등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었다. 생산성 향상에선 미국보다 뒤처졌다는 뜻이다. 캐나다 기업들도 평균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설비에 대한 투자나 연구·개발(R&D)에 있어 미국 기업보다 소극적이었다. 캐나다의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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