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은 어떻게 95분만에 공영방송 이사 13명을 뽑았나

박종화 2024. 8. 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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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강행과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는 그 정점에 있습니다.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 시사인,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5개 언론사는 각 사 울타리를 넘어 진행하는 ‘진실 프로젝트’ 첫 기획으로,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실태를 추적하는 ‘언론장악 카르텔’ 시리즈를 함께 취재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7월 31일은 공영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하루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된 이진숙이 김태규 부위원장과 함께 단 95분만에 KBS와 MBC 두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 83명 관련 서류 천 페이지 가량을 검토해 13명의 이사를 골라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최종 후보 면접 절차도 없었다. 이진숙-김태규 2인 방통위 체제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서 수차례 방통위 법규정 등을 어겼다. 

지난달 31일 방송통신위원회 취임식에 참석한 이진숙 위원장(오른쪽)과 김태규 부위원장(이진숙 옆)의 모습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취임 당일(31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강행하자 국회는 이틀만인 8월 2일 이진숙 탄핵안을 가결했다. 현재 이진숙은 직무정지 상태이고, 김태규가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공동취재팀은 8월 2일, 14일, 21일 사흘간 열린 ‘불법적 방문진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을 종합해, 지난 7월 31일 있었던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7월 31일 오전 9시 20분 : 출근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과천청사로 첫 출근했다. 이 위원장은 현관 앞에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수고 많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위한 전체회의 개최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계획은 취임식 때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태규 부위원장도 9시 10분쯤 첫 출근을 했다. 

이진숙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첫 출근길에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전 10시 :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 서류 보고 및 전달

이진숙과 김태규는 방통위 사무처로부터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의 지원서와 공영방송 이사 선임 관련 국민의견수렴 문서를 보고·전달받았다. 두 방통위원에게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들에 대한 정보가 처음 전달된 시각이다. 두 방통위원은 각자 집무실에서 서류를 들여다봤다.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 83명이 낸 이력서 및 지원 서류와 함께  400~500건의 국민의견이 이진숙과 김태규에게 처음 전달됐다. 전달받은 서류는 최소 100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태규는 8월 14일 국회 청문회에서 국민의견수렴 문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또 지원자의 결격 사유 검토 여부 관련해 “그런 부분은 사실은 좀 어느 정도 (지원자를) 믿고 봤다. 거기 결격이 있으면 올렸겠나”라며 주요한 결격 사유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을 시인했다.

오전 11시 : 취임식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취임식이 열렸다. 이진숙은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공영방송이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공영방송의 공공성 및 공정성 확보를 위한 이사회 구성을 조속히 완료하겠다"면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 강행을 예고했다. 

임명 첫 날부터 공영방송 이사 선임 강행을 예고하는 이진숙 당시 방통위원장의 모습

낮 12시 : “도시락 먹으며 인사 관련해 이야기 나눠”

이진숙과 김태규는 방통위원회 청사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 시간은 1시간 남짓. 김태규는 14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진숙 위원장과) 이런저런 얘기들은 했다, 인사와 관련해서도 당연히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또 당시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를 "마음 속으로는 추렸다"고 답했다.

오후 1시 : 방통위 사무처, 4개 안건 보고

이진숙-김태규는 방통위 사무처로부터 전체회의 안건 초안을 보고받는다. 좌미애 방통위 행정법무담당관이 보고했다. 방문진 이사 선임 안건과 KBS 이사 추천 안건, 부위원장 호선, 이진숙 위원 기피 신청 등 4개 안건이 올라왔다.

김영관 방통위 기획조정관은 8월 21일 청문회에서 "출근 첫날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하겠다는 것은 누구 생각이었나"라는 질의에 "(이진숙)위원장님 생각이었다"고 답했다.

안건 보고 과정에서 이진숙-김태규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면접 없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전체회의 1시간 전에 게시된 의사 일정. 4개의 안건이 올라왔다.

오후 4시 : 전체회의 1시간 전에 회의 공지

방통위 사무처는 공지를 통해 오후 5시 전체회의를 연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운영에 관한 규칙」 제3조는 '회의 개최 2일 이전에 각 위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과 달리, 이날 전체회의는 불과 1시간 전 공식 통지됐다. 그러나 방통위는 "긴급을 요하거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예외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예외 규정을 들었다.

이진숙-김태규는 ‘탄핵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을 긴급을 요하는 사유로 판단했다. 김태규는 8월 14일 청문회에서 “탄핵당할까 봐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서둘렀냐”는 질의에 “맞다”고 답했다. 또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긴급 안건으로 올린 이유에 대해 “야당에서 취임 즉시 탄핵하겠다고 계속 얘기하고”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야당 위원들은 “거짓말 하지 마라”며 “불법 행위가 있어야 탄핵하는 것이지 취임 즉시 탄핵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오후 5시 : 기피신청 안건 올라온 이진숙, 회피 없이 전체회의 강행

방통위 회의실에서 전체회의가 개최됐다. 대통령 추천 위원인 이진숙-김태규, 조성은 사무처장과 김영관 기획조정관, 속기사 등이 참석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장에는 예정된 4개의 안건이 올라왔다. 

이날 회의에는 속기사가 배석해 녹음과 속기록을 작성했다. 청문위원들은 당시 속기록과 회의록 초안 제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태규는 청문회에서 '회의록 공개는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위원회가 무력화 됐기 때문에 일개 주무관이나 저나 권한이 없어서 못 드린다”고 답했다. 같은 날 청문회에 참석한 이진숙도 “국회 본회의에서 186명이 탄핵해서 ‘당신은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직무를 행하지 말라’고 결정했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따르겠다”라며 답을 피했다.

문제는 본인 기피 신청 안건도 이진숙이 참여해 의결했다는 점이다. 권태선 이사장을 포함한 방문진 이사 3명은 회의에 앞서 "이사 선임과 관련한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이진숙에 대한 기피신청을 냈다. 그러나 이진숙은 자신에 대한 기피 신청 의결에 참여해 기피 신청 안건을 '각하'시켰다. 

8월 14일 청문회에서 조성은 방통위 사무처장은 기피 신청 당사자는 안건 의결을 회피해야 한다고 보고하지 않은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건 위원회에서 결정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진숙-김태규 '2인 체제'가 1시간 35분만에 4개 안건을 처리하는 모습. (출처 : 방송통신위원회)

오후 6시 45분 : “7~8차례 투표해 공동 득표로 13명 뽑아”

4개 안건은 불과 1시간 45분만에 모두 의결됐다. 이중 10분 정회 시간을 빼면 순수 회의 시간은 1시간 35분 정도에 불과하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심의('다' 안건) 에는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 전원(83명, 2명은 지원서 냈지만 중도 포기 선언)이 이날 공영방송 이사 최종 후보자로 올라왔다. KBS 이사 후보자가 52명, 방문진 이사 후보자가 31명이었다.

김태규는 8월 14일 청문회에서 “페이지를 일일이 따져 본 건 아닌데 양이 많았다. (문서 더미가) 4-5개였다”며 ‘83명 지원 서류를 다 봤다’고 답했다.

이진숙과 김태규는 면접 없이 투표를 통해 이사 후보자를 선임했다. 이를 위해 83명 후보자 전원의 명단이 담긴 A4 크기의 투표용지가 준비됐다. 2명 위원이 KBS 11명, 방문진 9명씩 적합자를 각각 기표하고, 공동 득표가 나온 후보자를 이사로 뽑는 방식이었다. 투표는 7~8차례 정도 이뤄졌다. 서로 다른 후보자를 뽑아 투표를 거듭했다.83명 후보자에 대해 2명 위원의 공동 득표가 나올 확률은 0.000136%지만, 두명 위원은 불과 7~8차례 투표 만에 공동득표자 13명을 뽑았다.  

조성은 방통위 사무처장은 8월 2일 청문회에서 "(방문진 후보자) 6명 나오고도 그 이후 몇번 했다, 안 나와가지고 중간에 (중단했다)"고 했다. 김영관 기획조정관은 2일 청문회에서 "이견 조정은 별도로 없었다"고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법(제12조)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과 임명을 '심의,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의견을 조율하는 '심의' 과정이 빠진 것이다.

여러 차례 투표했지만 공동 득표를 한 후보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자, KBS 이사 정원 11명 중 7명만 임명하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정원 9명 중 6명만 선임했다. 이진숙-김태규는 나머지 이사 임명에 대해선 추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방문진 이사 “방통위 공영방송 장악 시도에 법원이 준엄하게 꾸짖어야”

현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박선아, 김기중 이사는 지난 8월 5일 서울행정법원에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효력 정지 신청’과 ‘임명 취소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우선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원래는 지난 12일이 임기 만료였던 권태선·박선아·김기중 방문진 이사의 임기는 8월 26일까지 연장됐다. 동시에 지난 7월 31일 이진숙-김태규가 지명한 공영방송 이사 13명의 임명 효력도 26일까지 정지됐다.

서울행정법원은 본안 소송의 첫 심문기일을 지난 19일 비공개로 진행했다. 심문을 마친 박선아 이사는 기자들에게 “방통위 측 주장도 있어 (공영방송 이사 선임 회의록과 속기록) 문서 제출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가처분 결론이 날 것 같다. (법원은) 회의가 적법하다는 소명 책임은 피신청인(방통위)측에 있고 스스로 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각론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공영방송 이사 임명 취소 소송에 참석한 박선아 방문진 이사장의 모습 (출처: 기자협회보)

재판부는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이진숙-김태규 2인 체제’에서 결정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대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재판 결과는 8월 26일 전에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언론장악 공동취재팀 : 박종화 연다혜 박상희(뉴스타파) 신상호(오마이뉴스)

뉴스타파 박종화 bell@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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