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청년세대의 무기력과 ‘탕핑’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2024. 8. 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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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현실 앞 자포자기, 청년·기성 세대 간 갈등 내재
韓·日·中에서 유사한 세태…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중국의 청년세대 사이에서 ‘탕핑’이 유행이다. 탕핑은 ‘드러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중국의 세태까지 알아야 하나 싶겠지만 한국의 MZ 세대에겐 익숙한 말이다.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 사직 행렬 때 의사 커뮤니티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단어가 ‘탕핑’이었다.

중국에 ‘탕핑족’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헬조선이나 흙수저의 표현과 ‘N포 세대’가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당시의 CF 대사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에서부터 포기할 게 한없이 늘어나는 ‘N포 세대’는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중국의 청년과 공감대가 형성된다.

탕핑은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선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급속도로 확산했다. 희망 없는 현실에 자포자기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의미의 ‘사토리 세대’가 있다. 사토리 세대는 돈과 출세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최소한의 욕망만을 품고 살아간다. 나라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동아시아 청년들이 주도하는 ‘N포세대’ ‘사토리’ ‘탕핑족’이란 신조어, 비슷한 연령대에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는 게 우연일까?

기성세대는 동아시아 청년의 무기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과 고속성장을 함께 경험한 기성세대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이들 세대가 징징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청년의 무기력을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세상물정 모르는 나약한 의지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겪은 배고픔이 청년세대의 좌절보다 더 고통스럽다 말할 수 있을까?

탕핑은 어쩌면 청년세대가 선택한 세대 간 투쟁방식이다. 연금은 언제 고갈될지 모르고 의료보장은 계속 가능한 걸까. 평생 일해도 아파트 한 채 못 사는, 단물 다 빼먹고 더 이상 꿀이 나오지 않는 사회. 성장점이 멈춘 시대에 사는 것도 억울한데, 청년의 희생으로 초고령화 사회를 감당하길 바라는 압력은 어떤가.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에 냉소적인 듯하다. 부모 세대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떠넘긴다고 여긴다. 그 유산을 거부하고 개인파산 신청하듯 드러눕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되어선 안 되는, 세대 간 갈등이 내재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그냥 쉬는’ 대졸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냥 쉰다는 건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어서 백수가 된다는 의미다. 양질의 일자리는 그림의 떡이고 설사 있더라도 올림픽 메달급의 경쟁을 감당해야 한다. 민주화, 산업화 시대의 노동은 밥그릇의 신성함이었다. 먹고 사는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다. 그렇다고 요즘 청년에게 자신의 영혼까지 갈아 넣으라고 요구해야 할까? “입맛에 맞는 일자리는 원래 없다. 다들 버티면서 사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꼰대와 라떼가 되어버린다.

탕핑을 하는 젊은 세대와 진료실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있다. 우리 눈 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기성세대가 “무거운 바위를 어떻게 들어야 하나?” 고민했다면, 탕핑족은 다르게 접근하는 것 같다. 아무리 커다란 바위도 들 때만 무겁다. 즉, 바위를 들지 않으면 무겁지 않으니 차라리 포기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탕핑족은 저항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듯하다. 중국 당국은 탕핑이 불복종운동으로 번질까 우려해 탕핑 토론방을 폐쇄하고 소셜 미디어 검색에서 탕핑을 금지했었다. 한국의 사직 전공의를 탕핑족으로 보는 건 무리겠지만 사직 이후의 행동 전략은 그들 말처럼 탕핑과 유사하다. 그들은 기성세대인 의협과도 거리를 두고 오프라인 세상에서 파업 구호를 외치지도 않는다. 정부로서도 집단적 투쟁과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탕핑에는, 현재까지도 쉽게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기력증 세대의 냉소에는 서로 다른 심리, 현실을 회피하는 방관자적 태도와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태도가 혼재돼 있는 듯하다. 마치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밈(meme) 중에서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의 냉소적인 포기와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혼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겉으로 쿨해 보이는 그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종종 불안을 느낀다. 그들 스스로도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서 불안한 게 아닐까. 최근에 중국 대학생이 새 흉내를 내는 모습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게 유행이다. 새 흉내를 낸 사진을 게시하며 “공부는 그만하고 새가 되자”고 적는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묻는다. 사방이 막혀있는 새장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은 걸까. 우스꽝스러운 새 흉내에도 웃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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